[데스크 칼럼] “챗 GPT야, 기자생활 몇년 더 할 수 있을까”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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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우 디지털미디어부장

인공지능 대화형 챗봇 테스트해보니
30초 안 돼 그럴 듯한 기사 작성해 내
당장은 기존 정보 짜깁기에 능통하지만
머지 않아 특종 경쟁서 인간 압도할 듯

2013년 옥스퍼드 대학교 마틴스쿨은 ‘향후 10~20년 안에 사라지는 직업과 남는 직업’ 보고서를 통해 컴퓨터 기술 발전으로 20년 이내에 현재 직업의 약 47%가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기자직의 경우 20년 내 사라질 확률이 11%로 582개 직업 중에서 158위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신문은 만성화된 위기 속에서도 아직은 큰 탈 없이 한 해 한 해 생존을 이어가고 있고, 기자들도 하루하루 마감과 싸워나가는 것을 보니 보고서에서 기한으로 명시한 앞으로 최소 10년 동안은 기자직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낙관적인 전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전기가 왔다. 세계 최대 인공지능 연구소인 ‘오픈AI’가 지난해 말 인공지능 대화형 챗봇인 ‘챗(chat) GPT’를 내놓으면서 부터다.

챗 GPT는 네이버 검색처럼 키워드를 입력하는 방식이 아닌 대화하는 것처럼 물어보면 되고, 단순 정보의 나열이 아니라 맥락까지 포함해 완결된 구성의 글을 만들어낸다. 대학교 레포트는 물론 전문 연구자들조차 걸러내지 못할 수준의 논문까지 작성해낸다고 하니 교육현장이 초토화될 것이라는 위기음이 벌써부터 들려온다.


글로 먹고 사는 기자라고 사정이 다를까? 해서 챗 GPT가 기자로서 대성할 만한 자질을 갖고 있는지, 기자 직업에 종언을 고할 최후의 심판자가 될지를 가늠해보기 위해 기사 작성 테스트를 해봤다. 챗 GPT 사이트에 접속해 “코로나19 이후 소비 패턴 변화에 대해 기사를 써줘”라고 쳤다. 채팅창 속 커서가 몇 번 깜빡이더니 30초도 안 돼 원고지 5매 분량의 기사를 쏟아냈다. 온라인 쇼핑, 택배 서비스, 디지털 소비 증가에 더해 지역적이고 지속 가능한 소비로의 전환까지 속칭 ‘기사 야마(핵심)’에 맞춰 완결된 기사를 써냈다. 훌륭하다고까지는 못해도, 통계 수치나 현장감만 가미한다면 당장 신문에 실어도 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특히나 기자의 제1 덕목인 마감 엄수는 두말할 것도 없지 않나? 수습기자 지원자였다면 일단은 합격을 줬을 것 같다.

내친 김에 면접까지 봤다. 좋은 기사가 뭐냐고 묻자 “정확한 정보와 타당한 인용과 증거를 제공하고, 작성자의 관점과 의견을 투명하게 드러내며, 읽는 이들이 서로 다른 인식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작성된 기사”라고 답했다. 기자 직업이 몇 년 후에 사라질 것 같은지 의견을 물었다. “고도화된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기사를 작성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이 작성한 기사를 검증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추가하는 것은 인간 기자의 역할이 될 것이다. 또한 인터뷰, 사실 확인, 사람들과 상호 작용 등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힘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기자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역할과 방식으로 재정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로봇 기자’들에게 인간 기자들이 물 먹지 않으려면 어떤 기사를 써야 하는지 물었다. 자존심 상하지만 이 대목에서는 면접을 보는 게 아니라 숫제 조언을 구하는 모양새가 됐다. “기자들은 인공지능보다 더 복잡한 판단력과 창의성을 갖고 있으므로, 더 어려운 상황을 처리할 수 있는 기사를 작성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간의 창의성을 요구하는 인터뷰, 논쟁, 칼럼, 비즈니스, 스포츠, 사회 등 인공지능이 처리하기 힘든 다양한 주제의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 그러면서 “일부 기자들이 현재 유행하는 이슈를 따라가는 기사를 작성하는데 몰두하면서, 시민들이 중요한 이슈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게 만든다. 언론사나 기자 개인의 이익을 위한 기사나 사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 기사가 만연하면서 언론이 신뢰를 잃고 위기를 초래했다”는 쓴소리까지 했다.

채팅창을 닫으면서 느낀 점은 인공지능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스마트하게 기사를 잘 써내고, 인간미 없게 입바른 소리를 잘한다는 것이다. 당장은 기존 정보를 짜깁기한 기사를 작성하는데 능통한 수준으로 보이지만, 머지않아 속보나 탐사 보도 분야에서도 인간 기자를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인공지능은 초연결사회 곳곳에 흐르고 있는 사건사고나 이상 징후 등을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신속 정확히 캐치하고, 관련 빅데이터를 심도 있게 분석해 중요한 의미를 도출하며 특종 경쟁을 주도해나갈 것이다. 인공지능이 기자의 든든한 동료가 될지, 충실한 조수가 될지 혹은 선배 책상을 빼는 매몰찬 후배가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어쨌든 신년벽두부터 기자보다 ‘기레기’라는 멸칭으로 더 흔히 불리는 직업군에 속해 있는 한 사람으로서 영화 ‘터미네이터’ 속에서 인류를 파멸로 이끈 인공지능의 반격이 기자직군에서는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서스펜스를 느꼈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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