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202. 낯섦으로 인식하는 물질의 세계, 스가 키시오 ‘주광화’
스가 키시오(1944-~)는 일본 이와테현 출신이다. 1968년 도쿄 타마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활발하게 작업과 저술 활동을 이어 온 일본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이다. 스가는 ‘모노파’ 운동의 선발주자로, 이우환과 함께 모노파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스가는 평면에서 설치, 조각,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흔히 비어있다고 여겨지는 ‘공간’에 ‘물질’의 배치를 통해 개입함으로써, 공간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한다. 스가의 작업에서는 나무, 흙, 돌과 같은 자연물과 건축자재 등 인공물이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차용되어 조합되고 배치된다.
한쪽만 돌로 괴어져 삐딱하게 서 있는 거대한 나무 프레임이나 벽돌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이는 나뭇가지, 창틀에 비스듬히 기대어진 상태로 시야를 가리는 각목. 일상적인 공간 속에 ‘방치’한 오브제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낯섦’을 경험하게 한다.
작가는 이 낯섦을 통해 무심히 지나칠 풍경 속의 물질과 물질, 물질과 공간의 구조를 드러내고 자신의 작업을 물질의 존재를 ‘활성화(activation)’하는 작업이라고 명명한다. 스가의 초기작 중 설치 작품들은 전시가 끝난 후 폐기되곤 했는데, 이후에 모노파가 현대미술의 중요한 흐름으로 주목받으며 작품을 재제작하는 일도 있었다.
‘상황의 법칙(Law of Situation)’은 1971년 야마구치현 우베시에서 첫선을 보인 작품이다. 호수 한복판에 플라스틱 판자와 돌을 마치 길처럼 길게 설치했다. 1995년 ‘물질과 인식 1970: 모노하와 본질에의 탐구’ 순회전에서 재제작 됐다. 이 작품은 2017년 57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도 재제작 되며 세계적으로 주목받았다. 재미있는 점은 1995년 전시되었을 때는 버블랩을 활용해 실내 전시 공간에서도 물 위에 돌이 놓인 것처럼 보이도록 제작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그의 작품은 작품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보다는 그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소장품 ‘주광화(周光化)’(2009)는 여러 개의 나무 조각을 이어 붙여 비구상적 형태를 이루는 아상블라주 기법으로 제작한 작품이다. 흰색 아크릴로 채색된 채 접합된 조각들 사이로 채색되지 않은 한 조각이 전체 구성에 긴장감을 조성한다. 스가는 이런 요소를 활용해 환경, 즉 상황에 개입함으로써 물질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게 하고, 자연과 인간의 상호의존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서정원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