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진의 여행 너머] 솥바위 발은 3개인데…
스포츠라이프부 차장
몇 년 전 미국에서 외국 기자들과 교류할 때의 일이다. “난 당신이 쓰는 폰을 만든 나라(South Korea)에서 왔어.” 삼성폰을 들고 있던 그 기자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삼성이 일본기업 아니었어?” 애국심이 발동해 ‘소니는 일본’ ‘삼성은 한국’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이 처음 만든 제품이 뭔지 알아? 쌀과 설탕이야.”
지난 연말, 여행 취재차 경남 의령군 정곡면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생가를 탐방하면서 그 기자의 놀란 토끼 눈이 떠올랐다. ‘호암 생가’에 전시된 낡은 농기구를 보면, ‘천석지기’ 집안 출신인 이 회장이 정미소 사업부터 시작한 배경을 짐작할 수 있으리라.
창업주 생가 하면, LG그룹을 공동 창업한 구인회 회장과 허만정 선생이 태어난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도 빼놓을 수 없다. 행정구역만 다를 뿐 호암 생가에서 자동차로 30분이면 닿을 정도로 지척이다. 양대 그룹 생가의 중간 지점, 남강 한가운데엔 우뚝 솟은 ‘솥바위’가 있다. 수면 아래, 솥의 다리처럼 3개의 발이 바위를 떠받치는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 솥바위 반경 20리 안에 큰 부자 3명이 태어난다는 전설이 있는데, 실제로 삼성·LG·효성그룹의 창업주가 탄생했다.
이들 생가와 솥바위를 둘러보며 외국인들도 충분히 흥미로워할 만한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병철·구인회 회장은 지수초등학교(당시 보통학교) 같은 반에서 공부했고, 학교 운동장엔 효성 조홍제 회장까지 3명이 함께 심었다는 100년 넘은 ‘부자소나무’도 있다. 게다가 이들 창업주가 두루 나눔을 베풀었다는 미담도 전하니,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기업가 정신을 소개하기에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아쉬운 건 솥바위 전설에도 불구하고 생가 3곳의 콘텐츠를 하나로 엮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호암 생가 주변은 의령부자마을·부자길 등으로 홍보 중이고, 승산마을 구씨 허씨 집성촌의 고택들은 일반에 비공개다. 함안군 군북면 효성 조홍제 회장 생가는 더 동떨어져 관람객 발길이 뜸하다.
솥바위 전설은 ‘부자가 3명’이어서 가치가 있다. 의령군과 진주시·함안군, 3개 지자체가 힘을 모아 공동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면 어떨까. 남강 물줄기처럼 생가 3곳에 얽힌 이야기를 촘촘히 잇는다면 세계적인 명소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행정구역 경계를 허물면 가능성이 열릴 여행지는 무수히 많다. 지난해 가을엔 낙동강벨트 6개 지자체장이 모여 낙동강관광 공동개발에 뜻을 모으기도 했다. 한 도인의 예언에 불과했던 전설이 얼마나 생명력을 지닐지는 후대에 달렸다. 또 아는가. LG 텔레비전에서 솥바위 전설을 접한 외국인들이 삼성폰 카메라를 들이밀며 한국으로 몰려올지.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