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핵무장하면 원전 산업계 자멸”… 외신, 윤 “핵 보유” 발언 연일 비판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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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노스 “핵무장하면 경제·소프트파워 희생양”
대표적으로 원전 수출·우라늄 수입 제재받아
국내 원자로 등 원천 기술 라이센스는 미국에
이코노미스트 “윤 대통령 발언은 미국 노린 것”
무책임한 말에 북·중이 바라는 한·미 분열 지적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도 외교·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1일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도 외교·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북핵) 문제가 더 심각해져서, 여기 대한민국에 전술핵 배치를 한다든지, 우리 자신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핵을 보유해야한다는 발언(부산일보 지난 18일 자 12면 보도)에 대해 한국의 경제는 물론 한류가 전 세계에 뿌린 ‘소프트파워’도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다. 파장이 확산하자 지난 19일(현지시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 참석한 윤 대통령이 외신 인터뷰에서 “현재로서는 우리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를 전적으로 존중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진화에 나섰지만, 문제의 발언을 둘러싸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핵무장 하려다 핵산업 망칠라

미국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미국 스탠포드대 명예교수는 20일(현지시간)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에 기고한 칼럼에서 윤 대통령의 자체 핵 보유 발언 관련 “북한이 자신의 핵무기를 강화할 더 강력한 명분을 제공하는 것 외에 별 효과가 없다”고 썼다. 헤커 교수는 또 “한국의 핵 개발은 놀라운 경제 기적을 쓸어버리고, 전 세계에 한국이 구축한 ‘소프트파워’를 파괴하는 쓰나미를 촉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헤커 교수는 윤 대통령의 핵 보유 발언 배경에 대해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고 표명했다. 지난 1년 동안 북한이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 등 모든 측면에서 역대급 도발을 감행했지만, 이 모든 것을 그저 지켜봐야만 했던 윤 대통령의 좌절감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의 핵 보유 발언은 북한이 위협적인 핵무기를 구축한 방법과 이유에 대한 과거 30년의 역사적 몰이해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헤커 교수는 “몇 개의 핵 폭탄은 핵 억지력을 만들지 못하고, 특히 한국이 홀로 가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면서 “만약 한국이 이 길을 간다면 미국은 핵우산을 철회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북한에 대항하기 위해 핵 무기를 구축하려면 수십 년 동안 한국 국민의 생활 거의 모든 측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제·외교의 방향 전환이 필요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헤커 교수는 한국이 핵 보유를 추진한다면,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 부활 정책이 미국이 방해할 대표적 타깃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의 원전 원천 기술에 대한 라이센스를 미국이 쥐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원전 수출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 민간 원자로에서 사용되는 모든 우라늄을 수입하고 농축 서비스도 다른 국가에 의존하기에 NPT에서 탈퇴하면 한국의 원전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헤커 교수의 설명이다.

헤커 교수는 “한국이 핵 보유 결정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결과를 수반한다”면서도 “한국은 막대한 비용과 희생을 치르고 자체 핵무장하거나 미국의 핵우산 아래 남을 수밖에 없는 선택지 밖에 없다. 둘 다 가질 수 없다”고 썼다. 그는 또 “미국은 왜 한국인들이 확장억지에 의문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의 핵 보유 관련 발언을 다룬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의 지난 19일(현지시간) 보도. 이코노미스트 캡처 윤 대통령의 핵 보유 관련 발언을 다룬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의 지난 19일(현지시간) 보도. 이코노미스트 캡처

■윤 “핵 보유” 발언으로 한·미 분열?

앞서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도 지난 19일 “왜 한국은 자국의 핵무기 보유를 말하고 있는가”라는 기사를 게재하고, 윤 대통령의 핵 보유 발언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아산정책연구원 양욱 부연구위원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핵 보유 발언이 분명 무심코 나온 것이다”고 말했지만, 해당 발언이 많은 가설을 상상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윤 대통령이 문제의 발언을 듣기 원한 첫 번째 그룹으로 국내의 대북 강경 노선을 취하는 보수층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한국의 몇몇 여론조사에서 한국의 자체 핵 억지력에 대해 대중이 강력한 지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청취자는 북한이다. 같은 연설에서 윤 대통령은 “우리가 공격을 당하면 100배, 1000배로 때릴 수 있는 대량응징보복 능력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이 공격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며 “도발에 대한 자위권 행사는 확고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의도된 청자는 중국으로, 북한을 통제하지 않을 경우 한국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중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이코노미스트는 무엇보다도 윤 대통령의 핵 보유 발언이 미국을 노렸다는 게 가장 설득력 있다고 본다. 이 매체는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의 미사일을 시험함에 따라 많은 한국인들은 미국이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 시애틀을 버릴 수 있는지 의심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과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을 방어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철수 시킬 수 있다는 주장을 2025년 미 대선에서 또 다른 후보가 재사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한국인의 두려움을 증폭시킨다는 것.

오바마·트럼프 행정부에서 국가안보회의(NSC) 군축·핵비확산 담당 선임국장을 지낸 존 울프스탈 글로벌제로 선임고문은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에 더 가시적인 핵 공약을 제시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미국의 핵무기는 ‘우리는 30분 내로 도착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겠다’는 ‘도미노 피자’와 같다”며 “한국이 핵 보유를 결정한다면 미국은 분명히 반대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한국이 이른 시일 내에 핵무장을 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전망했다. 양 부위원장은 “윤 대통령이 오늘이나 내일 핵 무기를 사용하겠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윤 대통령의 이 같은 위험한 발언이 북한과 중국이 바라는 한·미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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