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기념일 아닌 침략의 날” 반성하는 호주인
26일 ‘호주의 날’ 시드니·멜버른 시위
영국 함대 상륙한 날 기려 만든 국경일
원주민 학살 관점서 폐지 요구 빗발쳐
호주 정부가 건국 기념일로 삼는 ‘호주의 날’(Australia Day)을 맞았지만, 호주 전국에서 호주의 날을 폐지해야 한다는 시위가 이어졌다.
26일(현지시간) 호주 ABC 방송 등에 따르면 호주 최대 도시 시드니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호주의 날은 ‘침략의 날’이라고 주장했다. 집회에 참여한 원주민 권리 운동가 폴 실바는 “우리는 호주의 날을 폐지해야 하며 절대 기념해서는 안 된다”라며 “누군가가 당신의 집에 침입해 가족을 살해하고 땅을 훔쳤는데 그날을 축하할 수 있겠는가”라고 항변했다.
호주의 날 반대 시위는 시드니와 멜버른, 브리즈번 등 호주 주요 도시에서 열렸다. 빅토리아주는 해마다 열리던 호주의 날 기념 퍼레이드를 중단하기로 했다. 빅토리아주 정부는 성명을 통해 “호주의 날은 일부 빅토리아주 주민에겐 애도와 반성의 날이고 원주민에게는 저항의 날”이라며 퍼레이드 대신 성찰과 단합, 포용을 위한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도 수도 캔버라에서 열린 호주의 날 기념행사에서 6만 5000년 이상 호주 대륙에서 살아 온 원주민들을 기리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화가 이어지는 이 대륙을 공유할 수 있다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주의 날은 1788년 1월 26일 영국 함대가 호주 대륙에 상륙해 시드니가 영국의 통치권 아래 있다고 선언한 일을 기념하는 날이다. 호주는 이날을 건국절로 삼고 시민권 수여식과 퍼레이드, 불꽃놀이 등 각종 축하 행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원주민의 시각으로 1월 26일을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원주민 입장에서는 외부 침략을 받은 고통스러운 날이라는 취지다.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호주인의 3분의 2는 이날을 ‘호주의 날’로 기념해야 한다고 답했지만 3분의 1은 ‘침략의 날’로 생각했다. 이처럼 의견이 갈리자 일부 회사는 직원들이 1월 26일을 휴일로 삼을지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했다. 1월 26일을 기념하지 않고 출근을 하면 다른 날 대체 휴일을 주는 식이다. 연합뉴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