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부산을 살릴 도시 브랜드 슬로건
논설위원
시, 새로운 슬로건 교체 작업
찬반 의견 팽팽하게 엇갈려
시민 공감대 넓혔는지 돌아볼 일
지역 정체성 대변할 문구·이미지
조급함보다는 진중한 접근
한 시대 각인할 작품 나오기를
늘 그렇듯 아쉬운 설 연휴가 끝나면 비로소 새해가 왔다는 느낌이 든다. 이즈음은 개인과 더불어 도시라는 공동체 역시 새 출발의 의지를 다지는 시간이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시간의 출발점에 선 한 도시의 정체성을 대변하고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그건 바로, 도시의 가치를 간결한 문구와 이미지에 담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하는 ‘도시 브랜드 슬로건’이 아닐까 한다.
부산시는 13일 도시브랜드위원회를 열고 ‘부산 이즈 굿(Busan is Good)’을 새 슬로건으로 결정했다. 세 개의 최종 후보안 가운데 가장 많은 표를 가려낸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른 것이다. 공교롭게도 서울시도 최근 새 슬로건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기존 슬로건 ‘아이.서울.유(I.SEOUL.YOU)’의 의미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그동안 끊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4개 후보안을 놓고 시민 선호도 조사가 이달 말까지 실시되고 있다.
‘잘 만든 슬로건 하나가 도시 전체를 살려 낸다.’ 도시 브랜드 슬로건의 중요성을 이만큼 잘 설명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이의 눈과 귀에 쏙 들어오는 슬로건을 만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지역의 정체성을 담으면서도 보편적인 감동을 끌어내는 문구가 흔할 리가 없다. 그래서 만들었다가 버리고 다시 새로운 슬로건을 찾는 일도 빈번하다. 부산에는 2003년 선포된 ‘다이내믹 부산’이라는 슬로건이 있다. 역동성에 초점을 맞춘 이 슬로건은 도시 부산을 알리는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 역사가 20년에 이른 이즈음, 부산시는 슬로건 교체를 추진 중이다. 시가 밝힌 개편의 명분은 이렇다. ‘부산의 가치와 역사성, 미래 지향성을 담기 위해 새로운 슬로건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도시 경쟁력을 더 높이고 새로운 미래를 열겠다.’ 좋은 말이긴 한데 막연한 수사로 느껴진다는 사람들이 많다. 왜 그럴까.
슬로건 교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왜 바꾸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째서 지금이어야 하는지’다. 이에 대한 근거가 명쾌하지 않아서다. 부산시가 내놓은 설명을 보자. ‘기존 슬로건이 세월이 흐르는 사이 글로벌 도시로 성장한 부산의 위상과 품격을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다는 인식이 높았다.’ 이런 인식이 어디서 나왔고 시민적 공감대는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한다.
물론 부산시는 사전 적정성 조사를 벌인 바 있다. 지난해 11월, 응답자 70%가 ‘새로운 슬로건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이 적정성 조사의 정확한 문구는 무엇이었을까. 조사 문항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의심하려는 게 아니다. 설문을 비롯한 각종 조사는 문구의 미묘한 내용에 따라 상반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상식을 상기하고 싶을 뿐이다. 또 일각에서는 조사 대상으로 삼은 시민들에 대한 대표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실제로 새 슬로건 ‘부산 이즈 굿’에 대한 평가는 팽팽하게 엇갈린다. 단순하고 기억하기 쉽다는 호평이 있는 반면, 모호하고 전달력이 약하다는 반응도 나온다. 후자의 경우 ‘부산이라는 특색이 없어 밋밋하다’거나 ‘다른 도시 슬로건과 비슷하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국내 굴지의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시민 참여도를 높이기 위해 부산시가 기울인 노력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후보 3안이 나왔을 때, 혹은 최종안이 결정된 뒤에라도 기존 슬로건을 포함한 선호도 조사를 할 수는 없었을까. 그렇다면 지금 같은 논란을 불식시킬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아쉬움이 있다.
과거 서울시의 슬로건 ‘아이.서울.유(I.SEOUL.YOU)’가 만들어질 때도 논란이 많았다. 그때 영국 신문 〈가디언〉은 작위성을 꿰뚫어 보고 이런 지적을 남겼다. ‘조급함, 객관성 부족, 지루한 전략, 잘못된 리더십, 선전의 힘에 대한 순진한 믿음, 지름길에 대한 열망.’ 이는 부산시 역시 명심해야 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미리 짜놓은 각본이나 혹은 전문가의 명망과 이벤트의 힘에 기대려고 한다면 곤란하다는 얘기다.
물론 하나의 슬로건이 도시의 모든 구성원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처음엔 어색했으나 이후의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사랑받게 된 경우도 있다. 부산의 새 슬로건은 어떤 길을 걷게 될까. 몇 해를 넘기지 못하고 시민들로부터 잊히기보다는 미래에 길이 남을 명작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려면 부산의 도시 슬로건은 한 시대를 대표할 만큼 내구력을 갖춘 슬로건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예산 낭비라는 안팎의 비판도 피할 수 있다.
3월 말 최종 결정 시기까지 아직 시간은 남아 있다. 최선의 보완과 마무리 작업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제대로 만든 최고의 도시 슬로건을 누릴 자격이 있는 부산 시민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