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어바웃 타임
이소정 소설가
고등학교에 올라가는 큰 아이는 방학에도 학원 다니기에 바쁘다. 최근 우리는 아이와 대학 입시에 대해 말한다. 아이는 몇 달 전과 달리 진지해졌다. 그 태도만 봐도 아이에게 한 살을 더 먹는 일의 무게가 유난히 큰 한 해 같다.
나는 가끔 큰 가방을 메고 학원 앞에 내리는 아이가 부러울 때가 있다. 누구나 그렇게 말하겠지만 나는 열일곱 살이 좋은 나이라고 생각한다. 예쁜 숫자다. 열일곱은 무언가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나이, 실수해도 되는 나이, 실패가 너무 당연한 나이, 실연을 당할 수 있는 나이, 아무것도 늦지 않은 나이라고 아이에게 말한다. 아이는 공부해야 되는 나이이잖아요, 라고 떨떠름하게 대답한다. 아이의 스트레스가 느껴진다. 나는 그런 아이의 스트레스마저 부럽다. 아이처럼 누군가 학원 앞에 나를 내려다 주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해줬으면 좋겠다. 그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면 나는 학원을 마치고 친구들과 먹던 떡볶이, 함께 보던 영화, 서로 주고받던 편지 같은 좋은 것들만 떠오른다. 내 말에 아이는 그게 도통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럼 엄마도 학원 다녀요, 라고 말하고 학원으로 쌩하니 들어가 버린다. 학원이 아니라 그 나이 때만 할 수 있는 일들이 부러운 거였는데 아이에게는 놀리는 것처럼 들렸나 보다.
올해는 만 나이가 도입된다고 한다. 대한민국이 모두 젊어진다는 슬로건이 눈에 띈다. 인터넷에서 만 나이 계산 프로그램에 들어가 내 나이를 확인했다. 두 살이 어려졌다. 열일곱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았다.
만 나이 도입을 두고 호칭의 문제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생일이 지나면 친구가 아니라 형이 되는 일이 애매해질 것 같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친구 사이의 호칭은 같은 해에 학교에 들어왔는냐에 따라 많이 결정되므로 크게 영향을 끼칠 것 같지는 않다고 한다. 또 만 나이 도입에 예외는 있다. 정년이나 국민연금 수령에도 변화가 없다고 한다. 청소년 보호법과 병역법 그리고 초 중등 교육법은 기존 연 나이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한다. 술이나 담배를 사는 나이와 입대를 하는 나이, 초 중등학교에 입학하는 나이는 연 나이로 한다고 한다.
내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 나이를 반긴다. 나도 내 나이가 변함없음을 말하고 기뻐한다. 한두 살 어려지는 일이 가능한 이런 일은 다시없을 일이지 않는가. 나는 지난해 나이를 다시 한 번 살 수 있다. 그건 선물 같다. 비록 변하는 건 숫자일 뿐이고 내 신체 나이와 기억에는 변함이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시간 여행자가 된 것처럼 두 번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자 ‘어바웃 타임’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주인공의 이야기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 놓친 사랑과 재회하고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영화는 우리 인생이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시 돌아간 과거에서는 다른 변수와 결과가 발생한다. 다시 살아봐도 우리가 예상치 못한 전혀 다른 곳으로 인생은 우리를 데려놓는다.
“이제 난 더 이상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하루를 위해서라도 나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이 멋진 여행을 즐길 뿐이다.”
영화는 시간을 되돌릴 필요가 없는 우리의 삶이 소중한 이유를 알려준다.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 열일곱을 지나지 않고 자신의 나이에 이르지 않는다. 모두에게 그 나이가 있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모여 인생이 여행이 되는 것 같다. 열일곱 아이의 시간도 나의 시간도 그래서 다 좋은 나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