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엽지만 독이 있는…무라카미 다카시 ‘좀비 미학’으로 풀어본 세상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
3월 12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
국내 최대 규모 160여 작품 소개
‘Mr.도브’ ‘무라카미.플라워’ 그리고 좀비. 일본 출신의 팝 아트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 160여 점을 부산에서 볼 수 있다. ‘일본에 있어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재난의 시대 예술이 할 수 있는 것’까지 예술가의 질문과 고민을 마주하는 자리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이우환과 그 친구들’ 네 번째 시리즈 전시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이하 무라카미좀비)를 3월 12일까지 개최한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은 이우환 작가와 현대미술사의 중심에서 예술관을 공유하는 동료 작가를 소개하는 프로젝트이다. ‘무라카미좀비’전은 미술관 본관 2층 대전시실과 별관인 이우환 공간 1층에서 열린다.
‘무라카미좀비’는 무라카미 다카시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회화·대형 조각·설치·영상 작품과 NFT 작업까지 망라한 국내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다. 1962년생인 무라카미는 일본 도쿄예술대학에서 일본화를 전공했다. 그는 ‘슈퍼플랫’이라는 독자적 개념을 창안하고 새로운 유형의 대중문화 선구자가 되고자 했다.
‘이우환과 그 친구들’ 네 번째 전시
도브·탄탄보·꽃·원상 시리즈부터
장편영화 ‘메메메의 해파리’ 소개
“인간 공포 실체화한 것이 몬스터”
학생 시절 그린 ‘원전’ 주제 작품도
무라카미는 현대미술을 시작한 경위에 대해 “2년 재수를 하고 대학에 가서 열심히 해서 그림을 잘 그리게 되었는데 대학원에 들어가니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무라카미는 “중요한 것은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콘셉트이고, 그림을 잘 그리느냐 못 그리느냐는 두 번째라는 것이 현대미술의 세계”라며 그래서 현대미술의 세계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26일 열린 개막 기자간담회에 무라카미는 자신이 운영하는 ‘카이카이 키키’ 스튜디오가 제작한 장편영화 ‘메메메의 해파리’(2013년) 속 캐릭터(쿠라게보)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무라카미는 “(모자 쓰기로) ‘다른 아티스트와 차이가 나게 됐다’고 생각했더니 바로 쿠사마 야요이 작가가 호박 모자를 쓰고 있더라”며 자신이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2013년 삼성미술관 플라토 전시 이후 한국 미술관에서 10년 만에 열리는 이번 전시에 대해 무라카미는 “일본 현대미술계에서 존경받는 이우환 선생의 전시 초대를 받아 영광이었다”고 했다. 이우환 작가가 무라카미에게 보낸 전시 초대 편지를 보면 ‘무라카미 님의 작품은 얼른 보아 경쾌하고 유머러스하고 화려하지만, 다시 보면 독이 있고 강한 비판성이 감춰져 있어 지나칠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우환 작가는 개막식에 참여해 무라카미와 함께 전시장을 돌아봤다.
본관 전시는 ‘귀여움’ ‘기괴함’ ‘덧없음’ 3개 섹션으로 구성된다. 이우환 공간에서는 한 획으로 그린 동그라미를 뜻하는 ‘원상’ 시리즈가 전시된다. 무라카미는 전통적 붓 대신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마음을 비우고 몸이 움직이는 순간을 담아냈다.
무라카미는 오타쿠(덕후) 문화의 중심에 있는 캐릭터를 적극 수용해 서구 미술에 일본 서브컬처를 편입시키는 전략을 펼쳤다. ‘귀여움’ 섹션에서는 도라에몽과 슈퍼소닉의 이미지를 결합한 ‘도브’ 캐릭터의 시작점이 되는 작품부터 변형된 도브 캐릭터가 포함된 ‘727 드래곤’(가수 지드래곤 소장품) 등을 선보인다. ‘가래를 토하는 소년’의 의미를 가진 ‘탄탄보’ 시리즈, 코스모스에서 영감을 받은 12개의 꽃잎에 에워싼 웃는 얼굴의 ‘무라카미.플라워’ 시리즈까지 일본 대중문화를 관통하는 키워드 ‘카와이(かわいい)’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너 괜찮니?’ ‘이 세상이 너무 이상하게 변하고 있어’ ‘될 대로 되라지’ 등 대화를 주고받는 작품 속 캐릭터들은 귀엽지만 기괴하고 우스꽝스럽다. 무라카미는 “인간은 질병·재해·전쟁 등 여러 공포를 가지고 있다”며 “그 공포를 실체화한 것이 몬스터나 악령”이라고 했다. 그는 관람객들이 ‘자신도 이런 공포를 마주한 적이 있다’는 것에 공감할 것을 기대했다.
‘기괴함’에서는 인간 존재의 불안을 삼면화로 표현한 프란시스 베이컨을 오마주한 작업 등이 전시된다. 검정과 붉은색으로 된 삼면화 배경에는 수많은 해골 이미지가 새겨져 있다. 영화 ‘메메메의 해파리’ ‘미스 코코’ 등의 작품도 이 섹션에서 만날 수 있다.
무라카미는 동일본대지진과 코로나 팬데믹이 자신의 작업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무라카미는 동일본대지진 때 TV에서 쓰나미로 엄마를 잃고 울고 있는 아이에게 주변 사람들이 ‘엄마는 별이 된 거야’라고 말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그는 “종교가 시작되는 순간을 본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간은 너무 힘들면 전혀 다른 스토리를 제공해서 뇌가 패닉에 빠지지 않게 진정시켜야 한다, 그것이 종교가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나온 100m에 달하는 ‘오백나한도’, 영화 ‘메메메의 해파리’ 등은 ‘스토리를 중심으로 한 예술’의 결과물이다. 팬데믹은 무라카미가 메타버스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서 뇌를 진정시키는 상황’을 발견하게 만든다.
‘덧없음’ 섹션은 과도할 정도로 과장된 형상으로 재난 앞에 무력한 인간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와 동명의 작품 ‘무라카미 좀비와 폼 좀비’는 작가 자신과 반려견이 좀비화한 것이다. 무라카미는 “내 몸을 디지털 스캔해서 장난 같은 감정으로 좀비로 만들어 봤다”고 했다. 좀비로 해도 재미가 없어서 내장을 파괴하거나 땅바닥의 하수구를 표현하는 등 6년에 걸쳐 완성된 작품이다. 그는 “(시작 단계에는 콘셉트가 없었던) 나로서는 특이한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 섹션에서는 원폭의 버섯구름에서 이미지를 차용한 ‘비행운’ ‘죽은 영혼들의 섬’ 등 인류가 처한 재난 상황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다. 이 중 ‘원전도’는 무라카미가 학생 시절에 그린 작품이다. “20대부터 50대까지 일관되게 ‘일본에서 원전을 운영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밝힌 무라카미는 일본인과 에너지의 문제점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 전시에 포함했다고 전했다. 전시장 마지막에 있는 비디오 작품은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무라카미는 전시작들에 대해 “하나하나 고집스럽게 애착을 갖고 만든 스토리가 있는 작품들로, 10년 넘게 걸린 작품도 있다”고 했다. 현대미술 관람객에게 새로운 제안을 하고 싶다는 무라카미는 “‘무라카미좀비’가 다양한 세대가 즐기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시립미술관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좀비'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