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구타에 또 숨진 미 흑인 청년, ‘플로이드 사태’ 재연되나
멤피스 경찰, 단속 영상 공개
“엄마” 외쳐도 폭행 멈추지 않아
연루 경찰 5명 살인 혐의 기소
대도시에서 항의 시위 확산일로
바이든 “분노는 이해, 폭력 안 돼"
미국에서 흑인 시민이 경찰의 과잉진압에 숨지는 사건이 또 발생해 항의 시위가 미국 대도시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번 사건이 수년 전 발생해 미국 전역을 인종 갈등에 휩싸인게 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유사한 흐름을 보일 조짐도 보인다.
지난 27일(현지시간) 테네시주 멤피스 경찰은 약 67분 분량의 ‘보디캠’ 영상을 공개했다. 해당 영상을 보면 지난 7일 경찰관 5명이 교통 단속을 이유로 흑인 청년 타이어 니컬스(29)를 운전석에서 끌어내린 뒤 무차별 구타하는 모습이 나온다. 니컬스는 경찰의 전기충격기 등으로 제압당한 채 얼굴과 몸을 가격당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여러 차례 “엄마”라고 외치는 장면도 영상에 담겼다. 그는 희귀병인 크론병을 앓고 있는데, 경찰에 구타당한 뒤 호흡 곤란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흘 만에 심장마비로 숨졌다.
대배심은 니컬스를 폭행해 숨지게 한 5명의 경찰관 모두를 2급 살인과 가중 폭행, 납치 혐의로 기소하라고 결정했다. 이들은 지난주 해고돼 전직 경찰관 신분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경찰들 역시 모두 흑인이다.
문제의 영상이 공개되자 미국 전역이 분노로 들끓었다. 멤피스를 비롯해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애틀랜타, 워싱턴DC 등 미국 대도시 거리마다 시위대가 뛰쳐나와 경찰의 과잉진압을 규탄했다. 멤피스 시위대는 “정의 없이 평화도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뉴욕에서 열린 시위에서 경찰은 3명의 시위대를 체포했다. 이 중 1명은 경찰 차량 앞유리를 부순 혐의를 받는다. 뉴욕에서는 경찰과 시위대 사이 경미한 충돌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평화로웠다고 CNN은 전했다.
2020년에 발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 때처럼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인종 갈등 후폭풍이 다시 미국에 몰아칠지 주목된다. 조지 플로이드는 당시 미네소타주 경찰 과잉진압으로 숨진 흑인 남성인데, 해당 사건 이후 미국 전역에서 ‘흑인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구호를 앞세운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파장이 확산하자 조 바이든 대통령은 26일 성명을 내고 “타이어 니컬스 가족과 멤피스 지역사회 전체에 진심 어린 애도를 표한다”면서 “타이어의 가족은 그의 죽음에 대한 신속하고 완전하며 투명한 수사를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슬퍼하고 법무부와 주 당국이 수사를 하는 동안 나는 평화적 시위를 촉구하는 타이어 가족과 함께했다”면서 “분노는 이해할 수 있으나 폭력은 용납할 수 없다. 폭력은 파괴적인 것이며 법에 반하는 것으로, 정의를 요구하는 평화적 시위에 폭력이 있을 자리는 없다”고 말했다.
멤피스 경찰서는 문제의 경찰관 5명이 소속된 ‘전갈(scorpion)’ 부대를 해산한다고 발표했다. 2021년에 출범한 이 부대는 도시에서 증가하는 범죄에 대처하는 임무를 맡았다. 멤피스 경찰은 지난 28일 트위터에 성명서를 게시하고 “영구적으로 부대를 해산하는 것이 모두에게 최선의 이익”이라며 “현재 이 부대 경찰관들도 이에 동의한다”고 썼다.
패트리스 로빈슨 멤피스 시의원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지역 사회는 이번 일에 대해 더 많은 질문과 요구를 가지고 있다”면서 “우리에게 이메일을 보낸 시민들이 이 일을 우려하고 있으며, 경찰을 통해 보는 것과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표현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