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자리 배치는 ‘들쑥날쑥’ 음악 사랑은 ‘한마음’…빈 소년합창단의 무대
보이소프라노가 들려준 두성, 상상 이상의 전율
국내 소년소녀합창단 '칼군무' 대신 노래로 승부
신장 순 아닌 실력·음색으로 배치한 자리도 인상
한국인 학생 4명 중 1명 내한, 한국 곡 앙코르도
3년 만의 한국 투어로 주목받는 빈 소년합창단의 부산 공연이 성황리에 끝이 났다. 부산문화회관 대극장은 매진이었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의 만족도 역시 상당히 높았다. 빈 소년합창단의 어떤 매력이 시린 겨울 눈 녹듯 사람들 마음에 스며들었을까. 단순히 노래를 잘한다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엇이 있었다. 29일 부산 공연을 통해 확인한 빈 소년합창단의 매력과 신기했던 점 몇 가지를 복기해 본다.
뭐니 뭐니 해도 두성(頭聲·머리 전체, 또는 코안의 높은 곳을 울려 내는 높은 소리)이 주는 마력이다. 가끔 흉성을 섞긴 했어도 진성이 아닌 두성으로 부르는 노래는 가히 ‘천사들의 합창’ 혹은 ‘천상의 소리’라고 부를 만했다. 빈 소년합창단의 고유한 가창 전통은 2017년 유네스코 지정 오스트리아 무형 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다. 우리네 소년소녀합창단이 주로 진성을 사용해 노래하는 것과는 느낌이 아주 달랐다. 높은 음역(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과 낮은 음역(앨토)으로 나눠서 합창하면서도 어떤 경우는 6성부, 7성부 화음을 들려주기도 했다.
특히 1부 연주 도중 지휘자 마놀로 까닌이 서툰 한국어로 “깜짝 선물”이라며 소개한 카치니(실제로는 블라디미르 바빌로프 곡) ‘아베마리아’를 일본인 보이소프라노 텐푸 군이 같은 단원인 웨슬리 군의 피아노 반주로 노래했는데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아베마리아보다 감동이었다. 해운대구립소년소녀합창단 권영기 예술감독은 “날개 없는 천사가 내려온 것 같았다”면서 “가슴이 찡했다”고 표현했다.
연주 외적으로도 이날 공연에선 문화 차이를 실감했다. 어느 게 낫다 못하다를 떠나 다른 점이 신기했다. 예를 들면 인형 같은 미소와 인사법, 그리고 ‘칼군무’에 익숙한 우리 소년소녀합창단과 아주 달랐다. 연주 도중 움직이다가 다른 단원과 부딪치거나 노래 도중에 신체 부위를 만지기도 했다. 평소에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소년들의 특성을 그대로 허용하는 듯했다. 일사불란함과는 거리가 먼 그 모습이 오히려 관객 눈에 예뻐 보였다. 그러잖아도 요즘은 퍼포먼스가 가미된 공연이 대세를 이루는데, 오로지 노래로만 승부하려는 그들을 보면서 클래식 음악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합창단 자리 배치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선 음악보다 시각적인 면을 고려해 같은 파트 내에선 신장순으로 배열하는 게 보통이지만, 빈 소년합창단은 자신 있게 음악을 이끌고 가는 사람을 중앙에 배치해 바로 옆자리 단원 간에도 키 차이가 크게 났다. 가장 중앙에 서 있던 보이소프라노 두 명은 마지막 곡 연주가 끝나고 앙코르로 부른 첫 곡 ‘아리랑’을 대표로 불렀다. 이 중 한 명은 일본인 단원이었다는 것도 아이러니했다. 아리랑 노래를 꼭 한국인 단원만 불러야 하는 건 아니지만, 노래 실력이나 음색으로 판단한 게 아닌가 싶었다.
공교롭게도 현재 빈 소년합창단에는 4명의 한국 학생이 있다. 이번에 내한한 까닌 지휘자가 이끄는 브루크너 팀에도 이연우(13) 군이 있지만, 이 군은 앨토 파트에서 노래했다. 이 군은 터키 민요를 합창할 때 바이올린 연주로 실력을 뽐냈다. 3년 전 서울 연주 때 경남 거제 출신 박시유 군이 ‘우리의 소원’과 ‘아리랑’을 잇달아 솔로로 불러 화제가 된 것과 대조적이었다. 시유 군은 부산 공연에 관객으로 참석했다.
오늘날 빈 소년합창단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프로그램이 있는 자체 학교를 운영 중이다. 중학교는 9~14세 소년 합창단 100명이 다니고 있으며, 모차르트·슈베르트·하이든·브루크너 등 4개 팀으로 나누어 활동한다. 한 팀은 오스트리아에 남아 빈 궁정 예배당의 주일 미사를 담당하고, 나머지 세 팀은 전 세계를 투어하며 순회공연을 펼친다. 빈 소녀합창단도 작은 규모이지만 만들어졌다.
한편 마지막까지 허를 찔린 대목은 또 있다. 공연이 끝나고 연우 군을 잠깐이라도 만나서 인터뷰할 수 있을지 합창단 측에 타진했다. 그러자 이들을 보살피는 오스트리아 현지에서부터 동행한 ‘보모’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공식 기자회견은 서울에서 마쳤고, 특정인 한 명만 인터뷰하는 건 형평성에 어긋나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한국식 발상으로 유일한 한국인 단원을 인터뷰하려고 했던 계획이 보기 좋게 빗나갔지만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리고 오래된(1498년 창설) 합창단 중 하나인 빈 소년합창단이 지금까지 존재하는 운영 방식 중 하나일지 모른다 싶어서였다. 단원들은 아직 어리고, 보모는 그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으니 말이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