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 명령에 대전 내줘 아쉬움 커… 전쟁 잊혀 가는 현실은 더 아파” [끝나지 않은 전쟁, 기억해야 할 미래]
대전전투 참가 김용대 씨
당시 22세로 국방경비대 입대
폭격에 단짝 오른쪽 다리 잃어
국토 중심 사수 위해 최선 다해
“여기저기서 폭격이 이어졌습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대전을 지키겠다고 전우들이 힘을 합쳤죠. 결국에 후퇴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지난 26일 대전시 동구보훈회관에서 만난 노병은 전투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73년 세월이 흘러 기억마저 흐릿해질 법도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노병의 이름은 김용대. 우리 나이로 올해 93세다. 김 할아버지는 국방경비대 9연대에 입대해 1901036이라는 군번을 받았다. 1950년, 미군 제24사단과 북한군 사이에 대전전투가 일어난 해였다. 당시 나이 스물둘이었다.
대전전투 당시 그는 신탄진 금강철교에서 펼쳐진 방어 작전에 투입됐다. 김 할아버지는 “낮이고 밤이고 항상 폭음소리가 쿵쿵 들렸다”며 “교대로 정찰하며 적군이 나타나면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결국 치열한 대치 끝에 후퇴 명령이 떨어졌다. 김 할아버지로선 늘 아쉬움이 가슴에 남는다. 인민군과 제대로 된 교전을 펼치지 못하고 끝내 대전을 내줘 안게 된 부채 의식이다. 그는 “인민군이 폭격 때문에 밀고 들어올 수 없게 되자 조치원과 공주 쪽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며 “잘못하면 포위 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치러진 전투를 일일이 놓고 평가한다면 선뜻 ‘성공한 전투’라 할 수 없다. 그러나 6·25 전쟁 초기 북한군의 노도와 같은 공격을 막아 줬고, 후속 부대에 시간을 벌어 주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김 할아버지는 “대전은 국토의 중심이라 이곳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며 “짝꿍이었던 전우는 폭격을 당해 오른쪽 다리가 끊어졌다”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어 “결국 대전이 함락되도록 내 줬지만 방어 작전을 했기 때문에 열흘이고 보름이고 지연할 수 있었다”며 “물론 방어를 잘했다고 볼 순 없지만 그래도 대전전투가 회자되지 않아서 가끔은 아쉽다”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대전전투를 비롯해 6·25 전쟁이 잊혀 가는 것을 매우 안타까워했다. 김 할아버지는 “항상 가슴이 아픈 게, 후손들이 6·25 사변을 알고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한다”며 “우리의 과거를 제대로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대전일보=김동희 기자 donging17@daej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