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온기 나눔
한국인은 불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이용하는 민족이었다. 온돌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초의 기록이 중국 고대 역사서 〈구당서(舊唐書)〉에 나온다. ‘고구려인들은 겨울에 긴 구들(長坑) 아래 불을 지펴 방을 덥힌다.’ 지금도 경남 하동 칠불사에 가면 온돌의 정수를 만날 수 있다. 한 번 불을 때면 49일 동안 따뜻하고 90일간 온기가 남았다고 전해지는 아자방(亞字房)이 거기 있다. 온돌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가장 이상적인 온방 시스템이다. 세계적인 옥스퍼드 사전에 ‘ONDOL’이 한글 이름 그대로 올라 있다.
서구화 물결 속에서도 온돌은 살아남았다. 뜨끈한 구들의 전통은 사라졌지만 최신식 아파트조차도 온돌 난방 시설은 필수다. 바닥에 불을 피우는 대신 별도의 가정용 보일러를 이용해 난방수 온도를 조절하는 간접 난방 방식이라는 게 다를 뿐이다. 전통 구들과 연탄이 혼합된 방식에서 현재 주류를 이루는 가스보일러 난방까지, 연료의 특성에 따라 구조와 형식은 다양하다. 온돌의 미래는 적은 연료로 열효율을 얼마나 극대화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파가 몰아칠수록 온돌의 기술적 진화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근 치솟는 가스값 때문에 난방비가 밥상머리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도시가스 요금은 액화천연가스 수입 가격과 연동되는데 이 가격의 급등 탓이 크다. 가뜩이나 힘든 서민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겨울나기 노하우에 몸부림친다. 이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근래 일본에서는 ‘웜 셰어(warm-share)’ 운동이 펼쳐져 눈길을 끈다. 집안에서는 한정된 공간에 모여 난방비를 아끼고, 밖에서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가서 따뜻한 시간을 보내자는 캠페인이다. 사람들은 온기와 휴식 장소를 얻고 쇼핑센터 등은 소비자를 모을 수 있어서 서로 윈-윈이다. 영국은 아예 무료로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나라 곳곳에 마련했다. 시민을 위한 ‘웜 뱅크’, 그러니까 ‘온기 은행’쯤으로 불리는데 도서관, 교회, 커뮤니티 센터 등에 3000여 곳이 있다.
이런 모습에서 온기를 골고루, 오랫동안 나누는 ‘온돌의 정신’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는 온돌의 종주국이다. 추위에 취약한 사람들의 고통을 분담하고 온기를 함께 누리려는 공동체 의식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어쨌거나 코로나가 물러간 자리에 보이는 것은 정반대의 풍경이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다시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세상은 새삼, 아이러니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