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현 성 심리학자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SNS 동영상을 통해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냐” “남매끼리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라는 말을 종종 접한다. 여기서 가족이나 남매는 통상 부부를 말한다. 저런 이야기가 나오기 전 선행된 질문은 아마 둘 사이의 스킨십이나 섹스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부부가 서로 이야기하다가, 혹은 친한 지인들과 대화 끝에 나온 말인데 과연 웃을 수 있는 말인가 싶다.

장난처럼 떠도는 유교보이나 유교걸(유교시대에서나 통할 법할 정도로 매우 보수적인 남성과 여성을 일컫는 말)이 세상에 이렇게 많았나 싶게 섹스나 스킨십에 대한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입에 오르내린다. 결혼해서 신혼 시기가 지나고 아이들이 생긴 후(자녀 없이 사는 부부의 경우에도) 몇 년이 지났을 무렵 친구들끼리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아침 출근할 때 가벼운 입맞춤이나 포옹을 한다고 하면 “아직도?”라는 반응이 “우리도 그래”라는 반응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이렇다 보니 섹스에 대해서는 더 말해 무엇하랴? 섹스나 스킨십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떠벌릴 필요는 없겠다. 하지만 설레던 마음보다는 안정되고 편한 마음으로 관계가 성숙한 사이에서 섹스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 또한 대놓고 자랑할 일은 결코 아니다.

요즘 결혼식에서는 주례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많이 없어지고 있다. 주례사를 안 들은 세대들은 그렇다 쳐도, 나란히 서서 주례 선생님의 단골 멘트인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사랑하겠냐”는 질문에 쩌렁쩌렁 큰소리로 대답했던 것은 마음만 그러겠다는 맹세였을까?

이제 사람들은 결혼을 ‘평생의 약속’이나 ‘내 인생의 단 한 번’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상황에 따라 약속은 깨질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음번 결혼이 존재한다. 그러나 함께 사는 동안 서로 사랑하는 것은 부부 사이의 가장 기본 규칙이다. 대부분의 부부는 강렬하게 끌렸고 사랑해서 서로 뜨겁게 안고 안기던 연애 시절을 지나 결혼했다. 물론 둘 사이의 상태는 변했지만 그 상황에 맞게 적절한 온도와 상태로 애정을 이어 가야 한다. 결혼을 하면 애정의 온도가 떨어지는 게 당연한 게 아니다. 신혼 때는 그때에 맞게, 만약 아이가 태어난다면 양육에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상황에 맞는 온도와 표현 방식을 찾아야 한다.

누구나 결혼 상태를 단순히 유지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라도 부러워할 정도로 건강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갖고 싶다면 더욱 사랑해 주겠다던 자신의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술잔을 기울이며 지인들과 수다거리로 내가 사랑받고 있지 못함을, 배우자를 사랑해 주지 않음을 떠들지는 말자. 단순히 섹스를 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비록 섹스 빈도는 낮을지언정 자신의 배우자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고 주고받는 말과 스킨십에는 애정을 담아야 한다. 부부는 사랑하며 살겠다는 약속으로 맺어진 관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