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사과’ 모르는 우리 아이… 독서로 문해력 키워야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단어 뜻 모르는 청소년 급증
국어 성적도 해마다 떨어져
동영상 노출 등 영향인 듯
도서관 프로그램 활용 추천
책 통해 많은 문장 접해야

아동, 청소년기 문해력 향상을 위해 전문가들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독서 교실 수업이 열리고 있는 모습. 부산시교육청 제공 아동, 청소년기 문해력 향상을 위해 전문가들은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독서 교실 수업이 열리고 있는 모습. 부산시교육청 제공

‘심심한 사과’ ‘사흘’ ‘금일’ ‘고지식’

요즘 청소년들은 이 단어 4개 중 몇 개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을까. 세대를 불문하고 문해력이 논란이다. 최근 한 업체가 사과문에 적은 “심심한 사과의 말씀 드린다”는 문장을 두고 일부 누리꾼들이 지루하다는 동음이의어 심심으로 잘못 이해해 논란에 불을 지폈다. 사과문에 적힌 ‘심심’은 마음의 표현 정도가 매우 깊고 간절하다는 뜻이다. 한 가수의 노래 가사에 하루, 이틀, 삼일, 사흘이라는 표현이 나왔고 사흘이 4일이 아니라는 지적에 청소년들은 인기검색어로 사흘을 검색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주기도 했다.

학교 현장에서도 문해력 문제는 어느덧 고질병이 됐다.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알거나, ‘고지식’을 높은(高) 지식으로 이해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교과 개념, 난이도 이전에 단어의 뜻을 몰라 교과서를 올바르게 읽지 못하고 시험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는 일이 흔한 일이 됐다는 이야기가 교육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문해력 심각한 수준

교육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2021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및 대응 전략 발표’에 따르면 최근 3년 간 우리나라 학생들의 국어 성적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교육부는 해마다 전국 중3·고2 학생의 약 3%를 표본으로 추출해 국어, 영어, 수학 학업 성취도를 평가한다. 지난 3년 간 국어 과목에서 보통 학력 이상인 고2 학생 비율은 2019년 77.5%에서 2020년 69.8%로, 2021년엔 64.3%로 뚜렷한 감소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국어 보통 학력 이상인 중3 학생 비율 역시 82.9%에서 75.4%, 74.4%로 줄었다. 심지어 국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인 기초 학력 미달 학생은 고2 기준으로 2019년 4%에서 2021년 7.1%로 배 가까이 뛰었다. 지난해 4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전국 초·중·고교 교사 11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37.9%(436명)가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이 70점 대(C등급)에 불과하다고 답했다.

■독서 부족? 코로나 탓?

인쇄 매체보다 영상 매체를 접하는 비율이 증가한 점이 문해력 저하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유아 때부터 유튜브 등 동영상에 자주 노출된 청소년들이 책과 신문을 읽는 것 자체가 밋밋하게 느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읽기에 소홀해진 상황에 몰린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간(2020년 9월~2021년 8월) 초·중·고교 학생의 경우 연간 종합 독서량은 34.4권으로 2019년에 비해 독서량이 6.6권 감소했다. 같은 조사에서 책을 읽지 않는 요인으로 ‘게임·스마트폰·인터넷·텔레비전 등을 이용해서’를 꼽은 학생들 응답률(23.7%)이 가장 높았다.

일각에서는 청소년 문해력 저하를 가속화하는 원인으로 코로나19 확산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초·중·고교 전반에 걸쳐 오프라인 교육을 온라인이 대체했고, 이는 인쇄 매체에 대한 접근성 감소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부산의 한 초등학교 교사 김 모(37) 씨는 “코로나 전후로 비교하면 아이들의 교과서 이해력이 많이 떨어졌다”며 “글을 읽고 쓰는 기본적인 교육은 얼마나 많은 글을 접하느냐의 문제일 수 있는데 전반적인 독서량 부족이 주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에서도 학생 문해력 저하에 심각성을 느끼고 교육 과정 개편에 나섰다. 국어 과목에서는 기초 문해력 교육이 강화되며 이를 위해 초등학교 국어 수업 시간 34시간이 늘어난다. 고등학교 국어 선택 과목에 ‘문학과 영상’, ‘매체 의사소통’도 신설된다. 고등학교 과정에서 ‘독서와 작문’, ‘주제 탐구 독서’, ‘독서 토론과 글쓰기’ 등 주체적·능동적 독서 활동 과목들도 신설된다.

■책과 친해지기

문해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진단이 필요하다. 초등 저학년의 경우 문해력을 무료로 진단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제작한 한글 또박또박(http://www.ihangeul.kr)사이트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의 한글 읽기, 쓰기 검사가 이뤄진다. 진단 결과에 맞는 보충 자료도 제공된다.

전문가들은 초등 고학년, 청소년 시기에는 문해력 향상의 열쇠로 독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많은 문장을 접하고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문해력 극복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문해력 상승의 첫 걸음으로 가정이나 학교에서 무작정 ‘책을 읽어라‘는 강압적 분위기 대신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문해력이 낮은 아이들의 경우 어린이, 청소년을 막론하고 책 읽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어려움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책과 친해지기 위해 도서관 등에서 진행하는 지역 도서관의 도서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방학을 맞아 각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독서 장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 구포도서관의 경우 2월부터 11월 까지 유아·어린이가 있는 가족을 대상으로 ‘우리집으로 도서관이 왔어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은 매월마다 신청자 10명에게 각각 50권 이내의 어린이실 도서와 접이식 서가를 한 달 간 대출해주는 프로그램이다. 부산 중앙도서관에서는 ‘서프라이즈! 취향저격 북박스 무료택배 서비스’를 운영한다. 나홀로 박스(10권), 절친박스(15권), 온가족 박스(20권)으로 구성된 북박스를 무료로 빌릴 수 있다. 북박스 주제는 알고 박스 안 책은 모르는 방식이다. 1박스 당 30일 대출이 가능하다.

문해력 향상을 위해 ‘어떤 책을 읽어야 한다’, ‘어떤 공부를 해야 한다’ 같은 왕도는 없다. 3월 신학기 시작 전 집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책과 친해지는 연습을 해보는 것만으로도 문해력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을 것이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