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가덕신공항은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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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가덕 이상’ 노골화하면서 ‘연대하자’는 TK
지역 핵심 이익 관철하려는 지역 정치 단면
특별법 ‘독소 조항’ 제거는 부산 정치의 몫
지역 여권 그 역할 외면하면 존재 가치 의문

부산 강서구 가덕신공항 예정지. 정종회 기자 jjh@ 부산 강서구 가덕신공항 예정지. 정종회 기자 jjh@

제목만 봐도 신물이 날 법하다. 가덕신공항과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특별법(TK신공항법) 얘기를 하는 게 나조차 마뜩지 않다. 멀리서 보면 도긴개긴이라고, 대충 타협하라는 훈수도 넘친다. 그러나 지역의 미래가 걸린 문제에 점잔빼고 마냥 지켜볼 순 없는 일 아닌가. “갈등 유발” 비판 속에서 내키지 않는 한마디를 또 보탠다.

“TK와 부산은 경쟁이 아니라 연대와 협력 관계다.” “신공항으로 싸우면 수도권론자만 웃는다.” TK신공항법의 ‘독소 조항’을 지적하는 부산을 향해 TK 정치권과 언론이 이런 충고를 한다. 가덕신공항의 지난 20년을 아는 사람이라면 속에서 뜨거운 게 치밀어 오를 테다. 가덕신공항의 ‘우군’을 기대하고 연대의 장에 끌어들였음에도 되레 최대 방해꾼이 됐던 TK의 행태는 부산이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 입장 바뀌었다고 저렇게 입바른 소리를 쏘아대니 참 얄밉다는 생각마저 든다.


머리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자원이 수도권으로 몰린 나라에서 남은 파이를 차지하려면 지역 간 경쟁은 숙명적이다. 각자도생의 자원 쟁탈전에서 때론 ‘안면 몰수’를, 때론 ‘내로남불’도 불사하는 게 지역 간 경쟁의 실상이다. 각 도시 최고 화두는 공히 ‘내 지역 발전’이고, 이는 TK도 PK도 마찬가지다. 옳다는 게 아니라 현실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니 TK에서 가덕신공항 특별법을 유일하게 지지했다는 홍준표 대구시장이 경남지사 시절 “물구덩이보다 맨땅이 낫다”며 산봉우리를 20개 이상 깎아야 하는 밀양을 지지했다는 사실을 굳이 상기할 생각도, 대구 정치권이 안으로는 가덕신공항보다 더 빨리, 더 크게 지어 영남권 여객·물류를 선점하자는 얘기를 공공연히 하는 걸 탓할 생각도 없다. 퇴락해가는 지역을 되살리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누군가 정치는 짐승의 비천함을 겪으면서 성인의 고귀함을 추구하는 것이라 했는데, 소멸하는 지역 리더라면 ‘떼쓰기’ ‘지역 이기주의’라는 비난의 진창을 굴러서라도 활로 하나 뚫겠다는 각오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 관점에서 이번 사안을 대하는 부산시와 지역 여권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작년 말부터 시작된 TK의 신공항법 속도전에 ‘먼 산 불구경’하던 부산 여권이 들끓는 비판에 지난달 30일 부랴부랴 모여 낸 결론은 “가덕신공항에만 집중하자”였다. 이 문제를 지적한 언론과 시민사회를 향해서는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한다’는 불만도 내보였다. 달을 가리켰더니 손가락을 꺾은 셈이다.

TK도 원하는 공항을 추구할 자유가 있다는 이들의 배려심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관념 속에선 두 공항이 동시 착공될 경우, 정부의 한해 교통 예산 3분의 1에 달하는 6조 원이 두 지역에 착실히 투입되고, TK신공항이 수 년 먼저 개항해도 따뜻한 연대 안에서 영남권 항공 수요를 두 공항이 적절히 분담하는 착한 드라마가 그려진다. 전쟁 같던 가덕신공항 성사 과정을 지켜본 나는 그런 판타지가 믿기지 않는다. 당장 그 아름다운 협력의 대상은 자신들의 신공항을 유사 시 인천공항을 대체하는 중추공항으로 격상하고, 활주로 길이를 3.8km까지 늘리는 방안을 법으로 강제하겠단다. ‘기부 대 양여’ 원칙은 온 데 간 데 없고, 지금은 국비 소요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2단계 확장안까지 마련해 그 규모를 끝없이 키우려 한다.

이쯤에서 부산 여권은 가덕신공항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돌아봐야 한다. 두 정권의 공약이었지만, 두 번 다 좌초됐다. 전 정부에서 다시 깃발을 올린 뒤에는 ‘왜 다 끝난 일을 재론하느냐’는 정부와 수도권 언론, TK의 3중 반대 속에 천신만고 끝에 쟁취한 결과물이다. 아름다운 양보나 선의의 배려는 없었다. 힘의 논리만 앞세우라는 뜻이 아니라 시민들의 절박감으로 얻은 결과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발등의 불’이 된 사용후핵연료 문제 대처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시민들도 8년 뒤 포화에 이르는 폐연료봉을 원전 내 저장하는 것 외에 달리 묘책이 없다는 걸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렇다면 그 희생이 영속화하지 않도록 구체적인 로드맵 정도는 이끌어 내야 할 텐데, 그저 법안 하나 발의하는 것으로 이 국면을 넘기려는 것 같아 보인다.

부산은 TK신공항을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김해공항 이용량의 5분의 1 수준인 대구공항의 수요가 앞으로 훨씬 커질 것이라는 비상식적인 전제를 바탕으로 ‘가덕신공항 이상의 공항’을 법으로 밀어붙이려는 그 무리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지역 이익을 지키는 당연한 문제 제기를 타 지역, 혹은 윗선의 눈치 때문에 하지 못하는 나약한 정치가 부산 여권의 실체라면 그 존재 가치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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