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엔 잠옷 바람 피난민·병원 채운 부상자… “도움 절실합니다”
튀르키예 동남부 강진 현장 ‘아비규환’
지역 응급실마다 다친 사람으로 포화
눈 내리는 중동 강추위에 주민 내몰려
시리아 난민 400명 있는 캠프도 피해
폭풍까지 불면서 구조·수색작업 난항
튀르키예 동남부를 강타한 최악의 강진으로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지진 피해 지역 주민들은 한파가 몰아치는 거리로 내몰렸고, 병원은 사망자와 부상자로 가득 찼다. 설상가상으로 시리아에는 강추위에 폭풍까지 몰아쳐 수색·구조작업도 난항을 겪고 있다.
6일(현지시간)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한 튀르키예 동남부 가지안테프 주민 에르뎀 씨는 이날 새벽 상황에 대해 “평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3차례나 강한 진동이 있었다”고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그는 “주민들이 지금은 차 안에 있거나 건물에서 멀리 떨어져 열린 공간으로 이동했다”며 “아마 지금 가지안테프에서 집 안에 있는 사람은 1명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양국에서 사망자가 수백 명에 이르고 부상자도 급증하면서 병원 응급실이 환자들로 포화상태다. 국영TV는 시민들에게 차를 이용해 부상자를 병원으로 후송해 달라고 전했다.
튀르키예 적신월사(적십자에 대응하는 이슬람권 구호기구) 케렘 키닉 대표는 “우려하던 곳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심각한 피해가 광범위하게 발생했다”며 헌혈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구조대는 칠흑같이 어두운 밤 임시로 설치한 조명에 의지해 철근과 벽돌 사이를 뒤졌고, 건물 잔해에 매몰된 이들의 인기척이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숨소리를 죽인 채 긴장한 모습이었다. 시리아 민방위단체 ‘하얀 헬멧’은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갇혔다”면서 현재 상황을 재앙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또 주민들에게 건물에서 빠져나와 열린 공간에 모여 있으라고 호소했다.
이번 지진은 튀르키예 남동부를 비롯해 수도인 중부 앙카라, 심지어 아프리카의 이집트 카이로까지 진동이 감지될 정도로 강력했다.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도 1분 가까이 땅이 흔들린 것으로 파악됐다. 진앙 주변인 가지안테프에서 약 250km 떨어진 디야르바키르에서도 진동이 1분간 이어졌고, 건물 유리창이 깨졌다.
인접국인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서도 건물이 흔들리면서 주민들이 집에서 뛰쳐나왔다. 다마스쿠스의 한 주민은 “벽에 걸린 그림이 떨어졌다”며 “무서워서 잠에서 깬 뒤 옷을 입고 문 밖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시리아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튀르키예 국경의 작은 마을 아즈마린에서는 담요로 싸인 아이들 시신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암자드 라스 시리아 미국의학회 회장은 “시리아 내 응급실은 부상자들로 가득 찼다”고 말했다. 이번 지진은 약 400만 명이 머물고 있는 시리아 난민촌도 강타했다. 의사인 무헵 카두르는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 전체를 언급하며 “수백 명이 사망한 것으로 우려된다”고 외신에 전했다.
한겨울 추위도 지진 피해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번 지진 발생 때 중동 지역 곳곳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튀르키예 현지 방송은 눈이 내리는 상황에서 잠옷 차림의 주민들이 무너진 건물 주변에서 구조 작업을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모습을 영상에 담았다. 튀르키예보다 인명 피해가 큰 시리아에서는 강추위와 폭풍으로 구조대원들이 수색작업에도 애를 먹고 있다. 시리아의 하얀 헬멧은 트위터를 통해 “아직 공식적인 집계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수십 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부상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하얀헬멧은 또 “강추위와 폭풍이 몰아치는 좋지 않은 기상 조건이 비참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요청했다.
한편 미국 방송 CNN에 따르면 최근 이곳에서만 25년 동안 규모 7 이상 지진이 7번 발생했다. 2020년 10월에는 튀르키예 해안에서 가까운 에게해 사모스섬에서 규모 7 지진이 발생해 24명이 사망했다. 같은 해 1월에도 동부에서 규모 6.7 지진이 일어나 최소 22명이 숨지기도 했다. 1999년에는 튀르키예 서부 이즈미트 지진으로 무려 1만 7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