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 초상화 ‘야간 순찰’이 주문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한 이유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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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있는 그림/이은화

책 <사연 있는 그림> 표지. 가난과 차별 등 예술가 32인와 그들의 대표작을 둘러싼 사연을 소개한다. 책 <사연 있는 그림> 표지. 가난과 차별 등 예술가 32인와 그들의 대표작을 둘러싼 사연을 소개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 알면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감동의 크기도 커진다.

<사연 있는 그림>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누구나 한번은 접했을 미술 작품과 작가에 얽힌 ‘사연’을 들려준다. 저자 이은화는 미술가, 평론가, 기획자, 교육자로 미술의 영역에서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현대미술 전도사’이다. 또 <그랜드 아트 투어> <숲으로 간 미술관>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 등 책으로 미술관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뮤지엄 스토리텔러’이다.


르네상스 미술부터 동시대 미술까지

예술가 32인과 대표작 얽힌 이야기

르브룅·카사트 등 여성 예술가까지

고난에도 꺾이지 않은 ‘예술혼’ 조명


책은 세계 각국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고뇌하고 번뇌한 예술가 32명의 이야기를 다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클로드 모네, 호안 미로, 앤디 워홀, 볼프강 라이프 등 르네상스 미술부터 동시대 미술까지 아우른다. 18세기 말 프랑스 궁정 화가로 국제적으로 활약한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같이 미술사가 놓친 여성 화가들에 대해서도 다룬다. 미술에 대한 저자의 풍부한 지식에 글맛까지 더해졌다.

네덜란드 바로크 미술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렘브란트 판 레인의 ‘야간 순찰’(1642)은 암스테르담 시민 민병대 부대원들의 주문으로 제작된 단체 초상화였다. 작품 제작 당시 네덜란드에서 인기 있었던 단체 초상화의 경우 그림에서 자기 모습이 두드러진 정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작품값을 냈다. 민병대의 반닝 코크 대장은 자신을 포함한 부대원 18명의 초상을 의뢰했지만, 화가는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 가공의 인물 16명을 ‘무임승차’ 시켰다. 민병대를 상징하는 장치로 또는 작가만 아는 이유로 추가된 인물에, 연극 무대처럼 극적인 화면 연출까지 ‘야간 순찰’은 ‘졸업 앨범’ 형태의 그림을 원한 주문자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 때문에 렘브란트는 초상화 주문이 끊겨 생활고를 겪게 됐다.

미술사에 남을 걸작이지만 작품 발표 당시에 외면당한 사례는 더 많다. 앤디 워홀이 첫 개인전에서 선보인 캠벨 수프 깡통 초상화는 사람들에게 외면당했다. 미국 출신 화가로 영국 런던에서 활동한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는 ‘검정과 금빛의 야상곡: 떨어지는 불꽃’(1875)이라는 제목의 풍경화를 혹평한 유명 평론가 존 러스킨을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기도 했다.

여자가 ‘정숙하지 못하게’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습을 그렸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 아버지를 향한 분노를 총을 쏘는 ‘사격 회화’로 표출한 니키 드 생팔. 파리 중산층 여성과 가정의 모습을 친밀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낸 실력파 화가 베르트 모리조. 주체적이고 역동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19세기 페미니즘 미술의 중요 토대를 마련한 메리 카사트. “나는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라고 말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책은 남성 중심의 미술사가 외면했던 여성 작가들의 이야기를 같이 조명한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는다.” 말년에 관절염의 고통 속에서 그림을 그린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말이다. 지독한 가난, 사회적 차별, 놀림과 조롱, 이별의 아픔 등 수많은 사연을 품고 예술혼을 불태운 작가의 작품을 우리는 미술관에서 만나고 있다. 각 사연은 작가의 이면을 보게 만들고 작품을 더 가까이 느끼게 만든다. 이은화 지음/상상출판/296쪽/1만 7500원.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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