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김장하 보유 도시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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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진주서 수십 년 무조건적 선행
MBC경남 제작 다큐 전국 열풍

“새로운 이야기 변방에 있다”
지역 언론 집요한 취재 돋봬

위기에 빠진 프로야구 보며
지방소멸 막는 방법 고민을

MBC경남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MBC 경남 제공 MBC경남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MBC 경남 제공

지방에는 아직도 사람 냄새가 느껴진다.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보고 새삼 깨달은 것이다. 간략히 소개하자면 경남MBC가 만든 이 다큐는 지난해 마지막 날과 새해 첫날 2부작으로 경남 지역에만 방송이 되었다. 방영과 동시에 SNS에서 추천 열풍이 불었고, MBC는 이례적으로 지난 설 연휴 전국 방송으로 다시 내보냈다. 그 뒤 전국에서 난리가 났다. 이 다큐가 던진 감동에 여러 방송뿐만 아니라 중앙지와 지방지를 막론하고 신문 기사나 칼럼으로 다루지 않은 곳이 드물 정도다.

김장하라는 한 개인은 대체 경남 진주에서 그토록 많은 선행을 수십 년간 어떻게 무조건적으로 해 왔을까. 그의 도움으로 수많은 학생이 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쳤다.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을 위한 쉼터가 만들어졌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 극단이 안정적인 공연장을 갖게 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제작했고, 〈진주신문〉은 10년 동안 발행할 수 있었다. 돈도 돈이지만 사람을 존중하는 마음은 존경스럽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장학금 덕분에 공부를 계속한 문형배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감사 인사를 하러 가자 “사회에 받은 걸 주었을 뿐이니 혹 갚아야 할 게 있다면 사회에 갚아라”고 했다. 특별한 사람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는 이에게는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거다”라고 위로했다. 장학금을 받고도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했다고 미안해할 때는 “그것도 사회를 위해 기여하는 길이다”라고 존중했다.

뜻밖의 인간적인 면모는 재미를 더했다. 그는 야구 구경을 좋아하고 최동원 선수를 참말로 좋아했다고 털어놓는다. “스트라이크 던져서 맞으면 또 그 자리에 한 번 더 던지거든. 쳐 봐라 이거지. 나는 그런 배포가 좋아.” PD가 어디 팬이냐고 묻자 “옛날에는 롯데였고, NC로 갈아탔지”라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웃었다. 다큐가 방영된 뒤 배주현 창원시 야구소프트볼협회 이사는 “이런 분이 NC 팬인 것이 코리안시리즈 우승보다 더 뿌듯하다”, 진주 사람들은 “김장하를 가진 진주에 산다”고 자랑한다.

롯데 자이언츠는 의문의 1패를 당했다. 롯데는 1988년에 선수회를 만들려고 했던 최동원을 삼성으로 트레이드했다. 최동원에 관한 다큐 영화를 만든 감독을 만나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롯데로부터 딱 한 번 전화가 왔는데 “NC의 지원을 받았느냐? 선수협 이야기가 나오느냐?”라는 두 가지만 묻고 끊더라고 했다. 롯데가 지금처럼 애증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의 전폭적인 사랑을 받는 팀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큐에는 김장하의 발자취를 집요하게 쫓는 사실상 또 한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영화는 평생을 지역 언론에 몸담은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가 퇴직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는 사람을 어떻게 취재할지 고민하고, 백팩을 메고 김장하를 아는 100여 명의 취재원을 버스나 기차를 타고 찾아가 인터뷰하는 모습이 로드무비처럼 느껴졌다. 김 기자는 30년 전에도 선생의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2016년에는 그의 이야기를 한 대목으로 다룬 〈별난 사람 별난 인생〉을 출간했다. 김 기자는 2015년 〈풍운아 채현국〉을 출간한 뒤 여러 사람들로부터 김장하 선생의 기록을 꼭 남겨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서 7년간 주변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고 한다. 종이 매체와 지역방송과의 협업도 눈여겨볼 대목이었다. 김현지 MBC경남 PD는 2년 전 선생의 승낙을 얻지 못해 그때는 포기했지만 이번에는 김 기자와 협업으로 성공했다. 김 PD는 전국 방송에 출연해 “새로운 이야기는 늘 변방에 있다. 그 이야기는 심마니처럼 훑고 다니는 우리가 제일 잘한다. 지역이 지역 스스로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줬으면 좋겠다”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평생 인터뷰를 거절해 온 선생이 이번에는 왜 취재에 응한 것일까. 선생이 “제일 문제점이 뭐냐면 사회가 겁을 내는 것이 있어야 한다. 겁나는 데가 없이 설치면 사회가 몰락하거든”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내 나름의 답을 얻었다. 지난해 허구연 KBO 총재는 프로야구의 위기가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초창기 프로야구의 성공적인 안착 원인을 군사정권의 일 처리 방식에서 찾은 박영길 전 롯데 감독이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대기업들이 서로 하고 싶은 대로 서울로 몰려든 게 아니라 지역별로 나누어 맡아서 균형을 이루었고, 그래서 전 국민이 자기 고향 출신 선수들이 뛰는 팀을 응원하면서 프로야구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결코 그렇게 하지 못한 훌륭한 출발이었다. 지금은 수도권 구단이 5개로 절반을 차지한다. 위기에 빠진 프로야구 판을 보면서, 지방소멸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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