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한 방울도 고귀하다
혈액(피)은 생명 유지 활동의 근간을 이루는 물질이다. 우리 몸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분을 운반한다. 몸무게 70kg 나가는 사람이라면 몸 안에 6L의 피가 들어 있다. 피가 다니는 길이 혈관이다. 온몸 구석구석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있는 그 길이가 무려 10만km다. 쉽게 말해, 지구 둘레 두 바퀴 반에 해당한다. 더 놀라운 것은 혈액이 달리는 속도다. KTX에 육박하는 시속 210km다. 끊임없이 막히지 않고 빠르게 흐르는 혈액 때문에 생명이 숨 쉬는 것이다.
혈액형에 따라 위험 질환도 다를까. 명백한 과학적, 의학적 증거는 없다. 다만 통계 결과가 있을 뿐이다. 맹신하지 말고 참고만 하라는 게 전문가의 조언이다. AB형은 치매를 조심해야 한다. 인지 능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다른 혈액형보다 80% 이상 높다. A형은 위암에 취약하고 B형은 췌장암 발병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헬리코박터균 감염 위험이 높은 O형은 십이지장궤양 발생 가능성이 다른 혈액형보다 1.4배 높다.
한국인의 혈액형 비율은 A형이 대략 34%로 가장 많다. 이어서 O형 28%, B형 27%, AB형 11% 순이다. O형이 늘 부족하다는데, 그 이유는 뚜렷이 밝혀진 바 없다. 다만 추정은 가능하다. O형은 혈액형을 검사할 시간이 없을 만큼 출혈이 심한 응급환자에게 먼저 투입된다. 또 혈액형이 다른 사람끼리의 장기이식 수술이 증가한 것도 O형의 수요가 많아진 원인으로 꼽힌다. 혈액형은 ABO 형 외에도 루이스(Lewis), 더피(Duffy), 키드(Kidd), 디에고(Diego) 같은 희귀종이 많다. 우리나라도 인구 구성이 다변화하고 있으므로 한층 정밀한 검사체계를 갖춰야 하는 이유다.
최근 혈액 부족 사태가 심각하다는 뉴스가 잇따른다. 겨울철 현상이긴 하지만 올해는 더욱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코로나19 여파에 연일 계속된 한파, 학생들의 겨울방학이 겹쳐 헌혈자가 크게 줄어서다. 지난 7일 전국 혈액 보유량이 사흘분 미만으로 떨어져 빨간불이 켜졌다. 부산도 1월 말 3.9일분으로 적정치를 밑돌았고, 경남도 7일 기준으로 4.1일분에 머물렀다. 적정 혈액 보유량은 일평균 5일분 이상이다. 유일한 해결 방법은 헌혈이다. 누구나 불의의 사고로 수혈이 필요한 신세가 될 수 있다. 헌혈은 타인의 생명을 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결국 나와 가족을 살리는 일이다. 한 방울의 피라도 고귀하고 소중하다. 공동체 구성원의 상호부조 정신이 절실한 때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