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영화관에 가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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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팬데믹 이후 OTT 통해 영화 관람
혼자 영화 보는 트렌드 정착
데이트·사교 위한 대체 장소도 많아
영화관 찾는 전통적 이유 사라져

영화, 더 많은 이가 봐야 하는 장르
영화관 새로운 생존 이유 찾아야

이모를 따라 처음 들어간 극장은 어둠 속에 웅크린 곳이었고, 드문드문 사람의 머리가 보이는 곳이었다. 희미한 냄새도 났던 것 같다. 늦게 들어온 관객들은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찾아야 했는데, 실수로 고개라도 들며 화면에 비친 자기 그림자에 무안해해야 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본 영화는 ‘삼국지’였다. 덥수룩한 장비와 익살맞은 소년 캐릭터가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보아야 했던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왜 우리가 극장에 왔을까?” 재빠르게 빠져나가는 이모를 따라 들어올 때만큼 빠르게 극장을 빠져나갈 때도 의문은 떠나지 않았다.

요즘 그때 막연했던 질문이 간혹 떠오른다. 팬데믹 이후 많은 이들이 혼자 영화를 보는 일에 익숙해졌다. 우리는 이제 거실에서, 방에서, 컴퓨터 앞에서, 그리고 휴대전화로, 유튜브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극단적인 질문의 한 형태로, ‘우리가 이제 영화관에 갈 필요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되찾을 수 있겠다. 우선, 최신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서라는 답변을 끌어낼 수 있다. 세계 인구의 몇 분의 일이 가입했다는 한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회사의 영화 콘텐츠 서비스도 최신 영화 개봉 순위에서는 적어도 한두 달 이상 뒤처져 있다. 영화 제작에 투여되는 자본의 논리를 고려하면, 영화는 영화관에서 먼저 개봉하고 그 이후 다른 곳에서 서비스되어야 한다. 그러니 최신 영화 때문이라도 영화관에 가지 않을 수 없다는 답이 찾아질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대답은 은근히 시간이 해결해준다. 개봉 영화를 당장 보지 않으려는 이들에게는 한두 달만 견디면 해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연인과의 데이트나 사교 목적으로 영화관에 간다는 답변도 예상할 수 있다. 쥬세페 토르나토레는 ‘시네마 천국’에서 영화관에 몰려가는 쏠쏠한 재미들을 보여 주고 있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일을 한다. 연인을 만나기도 하고, 세상의 소식을 듣기도 하고, 즐거움을 찾기도 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하지만 현대의 도시에는 이러한 기능을 대체할 개별적 장소들이 너무 많다. 굳이 영화관이 아니어도 된다는 말이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아야 집중력이 높아진다고 이도 있고, 스크린이 커서라는 대답도 들은 기억이 있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그토록 많은 영화관이 성업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1년 동안 영화의전당 프로그래머로 일하면서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환한 세상에서 팬데믹의 좁은 세상까지 따라다니던 질문과 더 깊게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왜 우리는 영화관에 가는가? 아직 만족스러운 답은 찾지 못했지만, 이 질문이 지금 세상에 필요하다는 확신은 얻게 되었다. 왜냐하면 영화관을 이용하던 전통적인 이유가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는 끊임없이 늘어났다. 오래된 영화부터 최신 영화까지,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영화에서 소수 관객만 열광하는 영화까지, 보편적인 소재와 주제로 다듬어진 영화에서 극단적인 전문성으로 무장한 영화까지. 하지만 영화는 언제나 더 많은 이들이 보아줄 때 언제나 더 많은 자부심을 갖는 장르였다. 그러한 영화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영화관은 이제 새로운 생존의 이유를 궁리해야 할 때이다.

더구나 우리는 팬데믹 이후의 세상을 다시 사는 사람이 되었고, 그래서 그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여 더 의미 있는 것들을 선택할 특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감히 우문을 던져 본다. 여러분의 영화관은 어디에 있는가? 자신만의 영화관을 찾을 수 있다면, 그곳에서 볼 수 있는 남다른 영화 또한 찾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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