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로 자리잡은 영화감독… ‘급류’에 휩쓸린 듯한 사랑 그리다
급류/정대건
힘겹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
저자의 두 번째 장편소설
소설가는 아니었다. 부산에서 만난 그는 ‘영화감독’이었다. 2019년 1월 해운대 영화의전당에서 ‘관객과의 대화(GV)’를 마친 밤이었다. 광안리 한 술집에서 “영화가 쉽지 않다”던 그는 “이제 글을 쓰려 한다”고 했다. 허투루 그 말을 들었다. 각본을 쓴다고 생각해 다음 영화를 기대했다.
소설가 정대건이 ‘급류’를 펴냈다. 2020년 신춘문예 당선작 ‘GV 빌런 고태경’에 이은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그는 마지막 영화인 ‘메이트’ 개봉 이듬해부터 매년 소설을 발표했다. 그가 말한 ‘글’은 각본이 아니었다.
신작 ‘급류’는 힘겹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고등학생 연인이 강렬하고 아픈 경험을 공유한 채 작별하고, 기적적으로 다시 만나 사랑을 되살리는 과정을 그렸다. 정 작가는 통화에서 “사랑처럼 어쩔 수 없는 것들에 ‘급류에 휩쓸리듯’이란 표현을 많이 쓴다”며 “소설 전체 분위기를 잘 설명하는 단어라 생각해 제목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소설에서 열일곱 ‘도담’과 ‘해솔’은 저수지와 계곡이 유명한 지방 도시 ‘진평’에서 처음 만난다. 아빠와 수영하러 간 도담이 남자아이 해솔을 구하러 물에 뛰어들면서 인연이 시작된다. 둘은 비밀이 없는 연인이 된다.
어느 날 급류가 덮친다. 도담의 아빠와 해솔의 엄마가 강 하류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끌어안은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불륜과 치정을 입에 올린다. 도담과 해솔은 그들이 죽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엄마 또는 아빠의 불륜을 의심한 둘은 눈으로 그 사건을 목격했다.
그들은 사건을 덮어 둔 채 열여덟에 작별한다. 죄책감을 안고 사랑을 믿지 못하며 살아간다. 둘은 스물하나에 기적처럼 다시 만나고, 위태로운 연인이 된다. 같은 트라우마로 서로에게 죄의식과 애처로움을 느낀 둘은 사랑하는 마음을 느끼며 과거를 이겨내려 한다.
정 작가는 “소설에서 극적인 장면을 통해 판단하기 어려운 사랑이라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며 “사랑이라는 게 너무 어려운데 마지막에는 용기를 내보자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영화를 찍었던 작가는 소설에서도 시간을 넘나들고 강렬한 이미지를 상상하게 만든다. 중요한 사건 장면에서는 ‘어둠’과 ‘랜턴 빛’을 활용해 그들의 사랑 혹은 죄의식을 떠올리게 한다. 정 작가는 감독 시절 카메라 한 대로 만든 다큐멘터리 ‘투 올드 힙합 키드’(2012)로 서울독립영화제 우수작품상과 관객상, 장편영화 ‘메이트’(2018)로 바르샤바 국제영화제 특별언급상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영상 연출이 아닌 소설 같은 글쓰기에 집중할 생각이다. 정 작가는 “OTT와 콘텐츠가 많아지면서 그동안 쓴 소설을 영상으로 만들지 않겠냐는 문의가 있긴 했다”며 “앞으로 각본을 쓰는 작가로는 참여할 수 있어도 연출은 안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감독은 많은 사람을 통솔하는 ‘선장’이 돼야 하는데 어느 순간 벽에 부딪혔고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며 “소설은 영화처럼 기회를 잡지 않아도 혼자 쓸 수 있고, 개인적으로 많은 위로가 된 책을 더 내고 싶다”고 밝혔다. 정대건 지음/민음사/300쪽/1만 4000원.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