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엔 물고기 대신 불가사리만 수북… 한숨도 ‘한가득’
이상 증식에 어업 활동 초비상
천적 없는데다 퇴치도 어려워
정확한 원인조차 몰라 더 답답
“지자체 예산 투입 조기 수매를”
“어망으로 바닥을 긁었는데, 불가사리 밖에 안 나왔습니다. 많아도 너무 많습니다.” “지난 몇 년동안에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올해는 정말 심각한 수준입니다.”
최근 남해안을 중심으로 어장 황폐화의 주범 불가사리가 크게 증식해 어업 활동에 비상이 걸렸다. 천적이 없는데다 퇴치작업도 쉽지 않아 어민들이 한숨을 내쉬고 있다.
16일 경남 사천시 어민들에 따르면 삼천포 앞바다 주변 어장에서 그물이나 통발을 건져 올리면 불가사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불가사리가 이상 증식했다. 지난 몇 년 동안에는 불가사리가 그리 많지 않았고, 나와도 먹이가 풍부한 특정 구역에서만 잡혔는데 올 겨울은 상황이 다르다. 새우조망어업을 하고 있는 사천시 이동성구획어업공동체는 최근 삼천포 구항 앞바다에서 불가사리 퇴치작업을 진행했다. 당시 어민들이 불가사리가 너무 많아졌다고 건의하자 시가 수매작업을 진행한 것이다.
작업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1시간여 만에 끝났다. 당시 이동성구획어업공동체는 선박 4대에 각각 그물을 달아 30분씩 두 번 그물을 건져 올렸는데 단 두 번 만에 5t, 배가 가득 찰 만큼 불가사리가 끌려 올라왔다. 주로 노란색 몸체의 아무르불가사리였는데, UN과 국제해양기구가 정한 생태계 파괴 우려 생물이다.
이동성구획어업공동체 관계자는 “당황스러웠다. 많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많을 줄은 몰랐다. 특정 구역만 그런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수심 50m 연안 전역에 분포하는 불가사리는 생명력이 끈질기고 번식률이 매우 높다. 암수한몸으로, 1마리가 200만~300만 개의 알을 낳으며 마리당 하루에 바지락 16개와 피조개 2개 정도를 먹어 치울 정도로 포식성이 강해 어장을 크게 해치고 있다. 패류는 물론, 문어와 물고기마저 먹어 치우는데 천적조차 없어 어민들로선 여간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사천의 한 문어통발 어민은 “통발을 넣어 놓으면 문어는 거의 없고 불가사리가 들어있다. 어업에 너무 큰 지장을 주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답답한 건 이상 증식의 원인조차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수온 상승이나 양식장에서 뿌리는 풍부한 먹이 때문이라고 짐작하지만 전체 해역에서 대량으로 번식한 점을 보면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자연 감소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만큼 당장 퇴치작업을 진행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불가사리는 천적이 없기 때문에 각 지자체에서 예산을 투입해 어민들이 잡은 불가사리를 사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장 편성해 놓은 예산이 없는 지자체는 추경을 거쳐야 한다. 문제는 수매 시기다. 이동성구획어업공동체처럼 그물로 대량으로 잡는 게 가장 현실적인데, 봄이 되면 많은 어구들이 바다에 풀려 그물을 끌기 힘들어진다.
여기에 새우조망어업의 경우 5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 금어기다 보니 아예 불가사리 퇴치작업에 나설 수도 없다. 예산 확보가 늦어질수록 불가사리 퇴치에 어려움이 커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남해의 한 어민은 “이대로 두면 어민 피해가 너무 클 것 같다. 수매 예산을 빨리 확보해야 하고, 수매단가도 조금 올려서 동참하는 어민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