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낙동강 ‘독수리 식당’이 전하는 말
천영철 사회부 에디터
낙동강 합천창녕보 수문 최근 닫혀
야생 동물 삶의 터전 모래톱, 물 잠겨
공존하려면 상대에 대한 공감 필요
특별하고도 다각적인 노력 이어져야
도시 바깥쪽으로 걷다 보면 산과 들도 만나고 크고 작은 물길도 만난다. 산과 들 주변의 얕은 개울은 물론 강과 같은 제법 큰 하천 주변에서는 야생 동물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흔적은 물길이 만든 모래톱 위에 발자국 형태로 남은 경우가 많다. 발자국의 주인공인 고라니, 너구리, 뭇새 등 야생의 생명들은 인적이 사라진 시간이면 모래톱을 찾아와 목을 축이고 휴식을 취한다. 지형에 따른 물의 유속 차이 때문에 형성된 모래톱은 단순한 퇴적물이 아니라 야생 동물이 물길에 쉽게 접근하도록 완충 역할을 하는 생명의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모래톱은 개발 때문에 많이 사라졌다.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된 구불구불한 물길을 직선으로 펴고, 하천 본래의 바닥 기울기와 생태계 등을 완전히 무시한 천편일률적인 하천 정비 공사가 한때 유행했다. 이 때문에 한국의 대다수 물길은 제각각 갖고 있던 아름다움을 상실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 물길에 깃든 생물들의 생태 균형과 평화도 파괴됐다. 그 뒤, 이에 대한 반성으로 시멘트를 걷어내고 예전의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노력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인간이 일방적으로 파괴한 자연과의 공존 균형은 여전히 제대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
공존은 언제나 쉽지 않다. 개인과 개인, 조직과 조직, 계층과 계층의 가치관과 입장 차이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가치관으로 상대를 평가하다 보면 공존은커녕 갈등만 키운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특히 더 어렵다. 자연은 직접적으로 항의하지도, 손해배상을 청구하지도, 집회를 열지도 않는다. 이런 이유로 생태 분야의 공존 파괴 현상은 죄의식이나 반성조차 없이 자행된다는 특성을 갖는다. 더욱이 인간은 자연과의 공존을 일방적으로 무너뜨리면서도 수자원 확보, 재해 예방 등의 명분을 달아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했다. 자연에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공존 파괴 행위가 계속되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최근 낙동강 합천창녕보의 수문이 닫혔다. 농지에 물을 대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차게 흐르던 물길은 수문에 가로막혔다. 수위가 상승하면서, 수문 개방 이후 형성된 드넓은 모래톱들은 물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 모래톱들은 온갖 야생 동물들의 안식처였다. 호사비오리, 흰꼬리수리, 원앙 등 얕은 물가에서 먹이를 구하는 습성을 가진 희귀 조류들이 이곳에서 쉬거나 사냥하며 삶을 이어갔다. 모래톱들은 겨울을 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독수리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이른바 ‘독수리 식당’ 역할을 하던 곳이기도 했다. 갑자기 삶의 터전을 잃은 독수리 등 야생 생물들은 파괴된 일상의 상처를 어느 곳에서 추스리고 있을까. 농번기도 아닌 이 차가운 계절에 농업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그렇게 시급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이어지고 있다. 수문 폐쇄 시기를 최대한 늦추거나 취수구 높이 조정 등 제3의 대안을 모색하는 한층 더 특별한 공존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유사한 일은 비일비재하다. 낙동강은 철새들의 낙원이다. 쇠제비갈매기는 낙동강 하구를 찾는 대표적인 여름철새로 꼽힌다. 이들은 4월 초부터 도요등, 신자도 등 낙동강 하구의 모래톱을 찾아 산란하고 새끼를 키운 뒤 다시 돌아간다. 그러나 쇠제비갈매기들은 한동안 낙동강 하구를 찾지 않았다. 번식 습성 등을 고려하지 않고 산란기에 모래톱 일대를 청소하는 등 서식지 교란 행위 등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낙동강 하구를 떠난 쇠제비갈매기 집단의 일부는 경북 동해안의 모래밭으로 번식지를 옮겼다. 하지만 오토바이들이 쇠제비갈매기들의 번식지인 해변 백사장을 돌아다니며 둥지와 알을 고의적으로 파손되는 등 수난은 계속됐다. 사진 촬영을 위해 둥지를 훼손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쇠제비갈매기 새끼의 다리에 줄을 묶어 연출 사진을 찍는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은 노력 없이 이뤄지지 않는다. 공존은 공감을 필요로 한다. 공감의 본질은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공존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정확하게 알고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간의 언어로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자연과의 공존을 위해서는 한층 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수문을 닫아버리면 낙동강의 평화는 끝이다. 모래톱은 수장될 것이고 강은 6m 이상의 깊이로 깊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떠한 생명도 강에 접근할 수 없다. 이 겨울 한 철이라도 더불어 사는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합천창녕보 수문 폐쇄를 안타까워하던 환경단체들의 성명서에 담긴 한 구절이다. 공존을 위한 최선의 방안은 그냥 찾아지지 않는다. 자연과의 공존을 위한 한층 더 특별하고도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천영철 기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