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마일리지의 배신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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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기업 판촉부터 공익 캠페인까지 널리 사용되는 마일리지는 항공업계에서 시작됐다. 마일리지(mileage)의 사전적 의미가 주행거리, 즉 마일 수다. 1980년대 미국에서는 항공 산업 규제 철폐로 항공사들이 노선 독점권을 내려놓고 경쟁을 벌여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충성 고객 유지를 위해 고안한 것이 마일리지다. 처음에는 탑승구에서 펀치카드로 탑승 실적을 찍는 형태로 시작됐는데 아메리칸 에어라인이 컴퓨터 기반 프로그램을 선보이면서 세계적으로 퍼졌다.

이제 마일리지는 카드사, 백화점, 커피숍 등 소비자를 상대하는 곳이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에코 마일리지, 푸드 마일리지같이 공익 캠페인에도 활용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항공 마일리지가 이슈인 것은 높은 자산 가치 때문. 유통업계 포인트 적립률이 0.1~2%인데 항공사는 10%에 이른다. 적립 기회는 적지만 모아 받는 보상 단위가 크다 보니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마일리지로 미국, 유럽 등 장거리 여행을 꿈꾸고 평소 경험하기 힘든 1등석도 등급 상향을 통해 가능하다.

대한항공이 4월부터 마일리지를 개편한다는 소식에 이용객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4개 지역별로 나눠 적용하던 마일리지 공제 기준을 거리별로 세분화한다는 계획이다. 인천~뉴욕 편도는 현재 이코노미석 3만 5000마일, 1등석 8만 마일이 필요하지만 개편 후에는 4만 5000마일, 13만 5000마일로 늘어난다. 가뜩이나 마일리지로 구매할 수 있는 좌석 수가 턱없이 부족한데 가치까지 떨어져 이용객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코로나 국면 정부 지원까지 받아 역대급 실적을 냈으면 사은 행사는 못할망정 이용객들이 영끌해서 모은 마일리지 가치를 떨어뜨리는 게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마일리지는 빛 좋은 개살구’라며 논쟁에 가세했다.

대한항공의 어설픈 해명은 이용객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장거리 노선 마일리지 차감을 늘리는 대신 이용객이 더 많은 단거리 차감을 줄이는 등 합리적으로 개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아시아나와 합병해 독점적 지위를 갖는 돈 되는 장거리 노선은 차감을 늘리고 LCC와 경쟁하는 돈 안 되는 단거리 노선은 줄여 항공사 이익을 도모하겠다는 속내여서 이용객들을 우롱한다는 비난까지 받게 됐다. 결국 대한항공은 다시 논의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이용객들은 불신을 거두지 않고 있다. 국토부도 한통속이라는 의혹도 여전하다.


강윤경 기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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