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 ‘끝’ 아니라 ‘쉬어 가기’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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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개월 만에 기준금리 동결

이창용 한은 총재, 추가 인상 시사
한·미 금리 차 1.25%P로 벌어져
물가 오름세, 금리 인상 압박 요인
올해 성장률 전망치 1.6%로 낮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의를 마친 뒤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침체 우려가 짙어지는 탓에 한국은행이 1년 반 만에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이는 금리 인상의 ‘끝’이 아닌 단순한 ‘쉬어 가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긴축 속도나 강도, 환율과 물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추가 인상이 가능하다는 것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들의 지배적인 견해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창용 총재는 기준금리 동결 결정 이후 기자들과 만나 “이번 동결을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추가 인상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한은은 이날 금통위 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현 3.50%로 동결했다. 2021년 8월부터 시작된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을 멈춘 것이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사실상 3.50%가 최종금리라는 전망이 제기돼 왔다.

하지만 이 총재는 시장의 전망이 현실화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총재는 “(이번 동결을)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며 “금통위원 6명 중 5명이 최종금리 3.75% 가능성을 열어 뒀다”고 강조했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이날 물가 압박으로 기준금리가 올 연말 3.75∼4.0%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은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을 압박하는 요인은 무엇보다 한·미 간 금리 차 확대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4.50~4.75%로 우리나라(3.50%)와의 격차가 1.25%포인트(P)다. 22년 만에 가장 크게 벌어진 상태다. 특히 이날 우리나라가 기준금리를 동결했는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시장의 예상대로 3월과 5월 두 차례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P 인상)을 밟으면 격차는 1.75%P로 ‘역대 최대’ 수준까지 벌어지게 된다.

이 경우 한국 경제는 더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외국자본의 유출 상황에 직면할 우려가 크다. 또 자본 유출로 인해 최근 안정세를 보이는 환율이 급등하면 수입물가 상승을 통해 국내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게 된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은이 오는 4월 11일 예정된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추가 인상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잡히는 듯했던 물가도 최근 심상치 않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공공요금 인상 등에 따라 전월(5.0%)보다 0.2%P 높아진 5.2%를 기록했다. 기대인플레이션도 이달 4.0%로 한 달 새 0.1%P 올랐다. 물가 오름세가 더욱 커진다면 기준금리 인상 압력도 한층 강해질 수밖에 없다.

한은이 당분간 긴축 기조를 지속하겠다는 뜻을 밝힘에 따라 금융 소비자들의 ‘이자 부담’ 고통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준금리를 동결했지만, 연내 최소 한 차례에서 두 차례 추가 인상이 예고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직 대출금리 인상이 끝났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특히 이미 지난 1년 반 동안 기준금리가 3%P나 오른 탓에 가계의 추가 이자 부담은 약 37조 원으로 추산된다. 한은은 앞서 기준금리가 1%P 인상되면 가계 이자 부담이 매년 12조 50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봤다

한편 한은은 이날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1.7%에서 1.6%로 소폭 하향 조정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3.6%에서 3.5%로 내렸다.

한은의 성장률 전망치는 여전히 2%대로 추정되는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것이다. 특히 1%대 성장률은 코로나19로 마이너스 성장했던 2020년(-0.7%),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0.8%)을 제외하면 2000년대 들어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것은 최근 한국 경제를 둘러싼 하방 리스크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기 대비 0.4% 감소해 2020년 2분기(-3.0%) 이후 10분기 만에 역성장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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