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피해자 두 번 울린 ‘법 기술자’
최근 3년 부산 학교 폭력 1.6배 늘어
가해자 불복 소송, 면책 제도로 악용
판결 지연되면 학생 분리도 쉽지 않아
지난 3년간 부산 지역에서 학교 폭력 신고 건수가 1.6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불복 절차인 행정심판위원회 청구 건수도 급증했다. 가해자가 현행법 상에서 '시간 끌기용'으로 불복 절차를 밟아 피해자를 2차 가해한 사례도 현실로 확인됐다.
부산시교육청에 따르면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지난 3년간 부산 지역에서는 6439건의 학교 폭력 신고가 접수됐다. 2020년에는 1554건, 2021년에는 2283건, 지난해에는 2602건으로 해마다 신고 건수는 증가했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학교 현장의 공백을 고려하면 신고 건수 증가는 학교 현장에서 학교 폭력 증가세가 더 가파른 상태임을 의미한다. 신고에 따라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열린 건수를 살펴보면 2020년에는 459건, 2021년에는 845건, 지난해에는 952건의 심의가 진행됐다. 심의 건수는 2020년과 지난해를 비교하면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전체 학교 폭력 신고 건수로 본다면 신고 건수의 20% 가량이었던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 개최 횟수는 지난해에는 32%로 3건 중 1건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회부됐다.
학교 폭력 신고가 들어오면 학교장 재량으로 화해, 중재 등이 진행된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와 학생 간 의사 합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교육지원청 주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로 이관된다.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는 외부인사, 전문가로 구성돼 학생 징계 여부를 심의한다.
최근 정순신 변호사 아들 문제와 같이 위원회 결정에 불복하는 현상도 자연스레 늘고 있다. 위원회에 불복할 경우 시교육청 행정심판위원회 심의나 행정 소송이 가능하다. 행정심판위원회의 경우 2020년 34건, 2021년 37건에서 지난해 82건으로 급증했다. 행정심판위원회는 가해자, 피해자 모두 양형에 대한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으나 행정심판위원회에 회부 될 경우 징계 절차가 진행중인 것으로 간주돼 징계 절차가 중지된다.
문제는 이같은 행정소송, 행정심판 등 ‘법적 조치’ 증가가 이번 정 변호사 아들 문제와 같이 자칫 가해자의 면책을 위한 제도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정 변호사 사례와 같이 가해와 피해가 명확한 경우도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이 같이 학교 생활을 하거나 가해 학생이 상급 학교 진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 변호사 아들의 경우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괴롭힘이 시작된 2017년 5월부터 대법 판결이 나온 2019년 4월까지 고교 3년 중 2년 가까이 가해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학교 폭력 문제에 있어서 가해자의 무죄 추정과 함께 ‘피해자 보호’도 함께 이뤄져야한다고 지적한다. 상급 기관으로 불복 소송, 심판 청구가 늘어나는만큼 학교 폭력 징계 절차는 최대 1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상급 학교로 징계 결과가 이월되지만 고등학교 졸업생의 경우 처벌이 불가능한 경우도 생길 수 있는 제도다.
학교폭력 소송 경험이 있는 법무법인 시우 최재원 대표 변호사는 “현행법으로는 재판을 오랜 기간 끄는 행위를 막기 어렵기 때문에 피해자 측이 탄원서를 통해 법원에 재판을 빠르게 진행해줄 것을 요청하는 정도가 최선”이라며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려면 법원 판결이 확정되지 않더라도 학생부 기록이 가능하도록 하는 절차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행정심판의 경우 학교 폭력 뿐 아니라 다른 사례 청구도 많아 신속한 처리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며 “소송의 경우도 대법원까지 진행될 경우 학교 차원에서는 현실적으로 학생 간 분리를 할 법적 근거도 쉽지 않아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교육부는 “학교 폭력 근절 대책을 3월 말 정도에 마련하겠다”고 27일 밝혔다. 교육부는 이날 브리핑에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이 2012년 수립되고 그로부터 10년 이상이 지났기 때문에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최근에 발생한 사안과 관련해서 사회적으로 우려와 개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어 그런 부분을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