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진설계 독려한다더니… 인증 지원 예산 '쥐꼬리 편성'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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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건물 내진 검사비 90% 지원
올해 신청 14건 중 8건만 처리
예산 적어 6건은 내년으로 유보
평가 적체 땐 설계율 추락 우려
"민간 수요 감안 예산 확대해야"

부산 강서구 부산학생안전체험관을 찾은 아이들이 재난안전체험실에서 지진대비 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김종진 기자 부산 강서구 부산학생안전체험관을 찾은 아이들이 재난안전체험실에서 지진대비 안전교육을 받고 있다. 김종진 기자

민간 건축물의 지진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시행된 내진 검사비 지원 사업이 예산 부족으로 ‘생색내기’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업 초기엔 민간 호응이 낮아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튀르키예 대지진 등으로 최근 들어 내진 설계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예산 부족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부산시는 올해 ‘지진안전 시설물 인증 지원사업’에 신청한 민간 건축물 총 14개소 중 8개만 내진성능평가를 시행하기로 했다고 27일 밝혔다. 나머지 6건은 내년 예산이 확보될 때까지 평가가 미뤄진다. ‘지진안전 시설물 인증 지원사업’은 내진성능평가비와 인증수수료 등 민간 건축물이 지진안전 인증을 받을 때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하는 것으로, 부산에서는 최대 315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시 지원을 받게 되면 건물주는 10%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올해 시가 ‘지진안전 시설물 인증 지원사업’으로 받은 국비는 1억 5100만 원으로, 시비를 더하면 2023년 총 예산은 2억 2650만 원이다. 연면적 1만㎡ 상가 건물 한 곳의 내진성능평가 비용이 3000만 원 안팎인 것을 감안하면, 한해 검사할 수 있는 건물은 8곳 정도에 그치는 셈이다. 이마저도 시가 추가 예산을 요청해 국비 지원이 2900만 원 정도 늘어난 것이다.

이같은 예산 부족은 지난해 6건의 내진성능평가 기준에 맞춰 국비가 배정되면서 발생했다. 내진성능평가 중요성을 홍보하면서 적극적으로 사업 신청을 독려하는 바람에 올해 신청 건수가 급증했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결국 한해 예산을 모두 소진하고도 모자라 일부 건물의 검사비 지원이 예산 확보 이후로 미뤄지면서 올해는 신규 신청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할 처지가 됐다. 신규 신청을 자제하지 않으면, 예산 부족이 매년 거듭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내진 전문가들은 현재와 같은 지원사업 형태로는 도시 전반의 지진 대응력을 높이기엔 턱없이 부족하다고 평가한다. 국토교통부 건축물 내진설계 현황에 따르면 2017년 6월 기준 내진설계가 부족한 부산 민간 건축물은 10채 중 9채로, 18만 4846 곳에 달한다. 한해 건축물 10여 곳을 내진성능평가하는 방식으로는 실질적인 성과를 내기조차 어렵다. 내진성능평가로 건축물의 구체적 상태를 진단하지 않으면, 내진보강공사가 불가능해 내진설계율을 높일 수 없다.

‘지진안전 시설물 인증 지원사업’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도 예산이 부족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으나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내진설계율을 빠른 속도로 끌어 올리려면 상당히 큰 폭의 예산 확대가 필요하다. 올해의 경우 사업 예산은 9억 3600만 원으로, 지난해 7억 1400만 원에서 2억 2200만 원 증가했다. 기획재정부와 협의해 예산을 정하다 보니, 예산을 쉽게 증가하기 어렵다는 게 행정안전부 관계자 설명이다.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정해진 예산을 17개 시·도로 나눠주는 과정에서 몇몇 지자체에 예산이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튀르키예 지진 영향과 각 지자체 수요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내년에 다시 예산을 늘릴 계획이다”고 말했다.

시는 시 자체 예산 확대 등 검사 수요를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올해 내진성능평가를 하지 못하는 건축물은 내년에 검사 우선순위를 주기 위해 신청을 받은 상태”이라며 “현재 2대 1 비율로 매칭되는 시비 비율을 높일 방법이 있는지 찾는 중이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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