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통영국제음악제 ‘경계를 넘어’ 31일 개막
4월 9일까지 통영음악당
25개 현대음악 공연 선사
온드레이 아다멕·카바코스·김선욱
상주 작곡가와 연주자로 참가 주목
일부 공연은 벌써 매진
리게티·라흐마니노프 탄생 조명
음악이 있고, 바다가 있고, 벚꽃이 있는 음악회. 2023년 통영국제음악제(예술감독 진은숙)가 오는 31일부터 4월 9일까지 ‘경계를 넘어(Beyond Borders)’를 주제로 경남 통영음악당에서 열린다. 음악제가 열리는 열흘 동안 25개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어 클래식 애호가들에겐 너무나 기다려지는 봄꽃 같은 음악회다.
올해는 특히 체코를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 온드레이 아다멕이 상주 작곡가로, 그리스 출신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와 한국의 스타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상주 연주자로 각각 참여한다. 2023년 탄생 100주년을 맞는 거장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1923~2006)와 탄생 150주년을 맞는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도 조명된다.
또 영국 뉴캐슬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명문 오케스트라인 ‘로열 노던 신포니아’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일원으로 3회 공연하는 것을 포함해 총 4회 출연하고, 세계 정상급 현대음악 연주 단체인 ‘앙상블 모데른’도 4회 공연한다. 3월 31일 개막부터 4월 9일 폐막에 이르는 25개 공연 면면을 살펴본다.
■데이비드 로버트슨과 TFO의 만남
개막 공연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Ⅰ’(3월 31일 오후 7시 콘서트홀)은 상주 연주가 중 한 명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협연하고, 데이비드 로버트슨(65)이 지휘한다. TFO는 2012년 통영국제음악제 10주년을 기념해 조직된 페스티벌오케스트라로, 세계에서 모인 젊고 실력 있는 오케스트라 전문 플레이어들로 구성됐다. TFO는 올해 음악제 기간 총 3번을 연주한다. 지휘 역시 로버트슨이 3번 모두 맡았다. 로버트슨은 학자로도 유명하고, 현대음악 해석에 특히 강점을 갖고 있다. 미국 태생인 로버트슨은 세인트루이스 심포니 음악감독(2005~2018)과 영국 BBC 심포니의 수석 객원지휘자(2005~2012), 호주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2014–2019) 등을 역임했다.
이날 연주곡으로는 라벨의 ‘권두곡’(볼레즈 편곡), 루치아노 베리오 ‘신포니아’, 찰스 아이브스 ‘대답 없는 질문’,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 77을 선보인다. 이 중 이탈리아 작곡가 베리오(1925~2003) 작품이 주목된다. ‘신포니아’(1968~1969)는 뉴욕 필하모닉 창단 125주년 기념으로 위촉된 5악장으로 구성된 관현악곡이다. 8명의 혼성 중창을 동반한다. 제4악장까지는 베리오 자신의 지휘에 의해 이 오케스트라에서 1968년 10월 10일 초연됐다. 이듬해 5악장으로 개정돼 도나우에싱겐 음악제에서 다시 초연됐다. 2부에 연주될 바이올린 협주곡은 카바코스가 연주한다.
■티켓 열자마자 매진된 공연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Ⅱ’(4월 1일 오후 7시 콘서트홀)는 2023 통영국제음악제 중에 가장 먼저 매진된 공연이다. 아시아 초연되는 윤이상의 ‘교향악적 정경’(1960),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교향곡 1번이 연주된다. ‘교향악적 정경’은 유럽으로 건너간 최초의 윤이상 관현악 작품으로 음반도 1개뿐일 정도로 연주가 힘든 곡이라고 한다. 또한 통영국제음악제 프로그램에선 자주 보기 어려웠던 라흐마니노프 곡이 2곡이나 연주된다. 통영국제음악제 측은 “라흐마니노프의 150번째 생일을 축하하고 헌정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밝혔다. 진은숙 예술감독도 첫 매진이 개막제가 아닌 이 공연이 된 걸로 전해듣고 놀랐다는 후문이다. 피아노 협연은 김선욱이 맡았다.
이희문 프로젝트 ‘날’(4월 2일 오후 9시 블랙박스)도 매진이다. 이희문은 올해의 주제 ‘경계를 넘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일 것이다. 전통의 재창조와 경계를 허물면서도 다른 장르와의 융합을 시도한다. 공연 제목 ‘날(捏)’은 ‘나를’의 구어적 표현이기도, 연장의 가장 얇고 날카로운 부분을 뜻하는 ‘날’일 수도, ‘말리거나 가공하지 않은’의 뜻을 더하는 ‘날’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나를 향하여 노래를 베푼다’고 한다.
■작곡가 개발한 악기·고음악 악기 연주
개막 공연에 앞서 사실상 2023년 통영국제음악제 첫 테이프는 20세기 미국 작곡가 해리파치의 ‘플렉트럼과 타악기 춤’(3월 31일 오후 5시 블랙박스)이 장식한다. 해리파치는 서양음악사 500년에서 기존에 갖고 있는 근간을 다르게 발전시킨 작곡가 겸 이론가이다. 해리파치는 피아노 한 옥타브 안에 있는 12개 음을 43음으로 나눴다. 그러다 보니 기존 악기로는 그 소리를 낼 수 없어 자기 곡을 연주하기 위한 새로운 악기를 개발했다. 전 세계에서 한 대밖에 없는 악기다. 이번 연주를 위해 LA에서 공수해 온단다. 그다음 날 악기 클래스도 진행할 예정이다. 해리파치는 아다멕의 ‘특히 희거나 검은 결과물’ 아시아 초연(4월 8일 오후 5시, 4월 9일 오전 11시 블랙박스) 때는 또 다른 개발 악기 ‘에어머신’을 선보인다.
로열 노던 신포니아도 하이든 첼로 협주곡 1번(4월 4일 오후 7시 콘서트홀)을 들려주면서 흔히 보던 첼로가 아닌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로 연주한다. ‘어깨 위의 첼로’라는 뜻의 비올론첼로는 현대 악기 첼로보다 조금 작고, 비올라보다 큰, 고음악 악기다. 비올라보다 한 옥타브 아래 음을 내는 것도 특징이다.
■음악제 정체성 드러낸 신작 '눈길'
통영국제음악제의 색깔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다수 준비된다. 특히 신작 위촉은 통영국제음악제 정체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이 상주 작곡가 아다멕(이야기를 돌려드리겠습니다)과 한국 작곡가 최현준(피아노 오중주와 목관오중주와 더블베이스를 위한 음악)에게 각각 위촉한 신작은 세계 초연이다. 이 작품은 ‘앙상블 모데른 with 우웨이’(4월 3일 오후 7시 콘서트홀) 연주로 공개된다. 이날 공연에선 아다멕의 ‘생황과 앙상블을 위한 잃어버린 기도서’(2019)를 아시아 초연하고, 리게티의 ‘아방튀르&누벨 아방튀르’(1965)도 한국 초연한다. 앙상블 모데른은 세계 3대 현대음악 단체로 한 해에 신작 70여 편을 연주하는 단체로 정평이 나 있다.
■공동으로 곡 위촉 사례도 늘어
한국 초연하는 ‘미셸 판 데르 아:북 오브 워터’(4월 4~5일 오후 9시 30분 블랙박스)는 베니스비엔날레, 앙상블 모데른, 암스테르담 뮈직헤바우, 쾰른 필하모니, 홍콩아트페스티벌 등과 통영국제음악재단이 공동 위촉·제작(2021/2022)한 작품이다. 네덜란드의 현대음악 작곡가인 미셸 판 데르 아는 ‘작곡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그로마이어상)을 2013년 수상했다. 에스메 콰르텟 등이 출연한다. 2016년 결성된 에스메 콰르텟은 2018년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 런던 위그모어홀 국제현악 사중주 콩쿠르에서 1위에 오르며 유럽 클래식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통영국제음악재단 김소현 예술사업본부장은 “작품 의뢰비는 물론이고 제작비도 비싸지면서 최근엔 공동 위촉 작품이 늘고 있는데, 통영국제음악제 위상이 높아지면서 공동 위촉에도 당당히 함께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북 오브 워터’의 경우 베니스와 홍콩을 거쳐 통영에서 연주된다.
해외 음악 단체와 편곡을 공동 위촉한 곡도 있다. ‘앙상블 모데른 with 김선욱’(4월 6일 오후 7시 콘서트홀)은 통영국제음악재단과 앙상블 모데른이 공동 위촉(편곡)한 리게티의 ‘여섯 개의 피아노 에튀드’를 세계 초연한다.
국내 음악 단체와 공동 위촉한 곡도 있다. 통영국제음악재단은 ‘부산시립교향악단’(4월 5일 오후 7시 콘서트홀)과 공동으로 신동훈의 ‘생황, 아코디언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2인극’을 위촉(2022)하고 아시아 초연한다. 최수열 부산시향 예술감독 지휘로, 우웨이(생황), 파스칼 콩테(아코디언), 부산시향이 출연한다.
■아시아·한국 초연 작품도 여럿
직접 위촉한 곡은 아니지만 아시아 초연, 한국 초연도 눈에 띈다.
‘로열 노던 신포니아’(4월 4일 오후 7시 콘서트홀)는 토마스 아데스의 ‘쿠프랭에 의한 세 개의 습작’(2006)을 한국 초연한다. 로열 노던 신포니아(Royal Northern Sinfonia)는 1958년 영국 뉴캐슬에서 창단한 체임버 오케스트라이다.
2012년작 ‘온드레이 아다멕:디너’(4월 8일 오후 5시, 4월 9일 오전 11시 블랙박스) 작품도 한국 초연이다. 음악가들의 저녁 식사, 영상과 음악, 페인팅이 결합된 아다멕의 시적 세계를 보여준다. 아다멕 지휘로, 앙상블 모데른이 연주한다.
카바코스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진은숙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정적(靜寂)의 파편’(2021)은 통영국제음악제 폐막(4월 9일 오후 3시 콘서트홀) 공연에서 아시아 초연한다. 진은숙 작곡가는 악기를 위한 협주곡은 그 악기를 위해 하나만 쓰겠다고 했지만 사이먼 래틀의 의뢰를 받고 카바코스의 연주에 매료돼 두 번째 바이올린 협주곡을 완성했다. 이 곡은 지난해 1월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초연했다. 이날 폐막 공연에선 말러 교향곡 1번이 함께 연주된다. 로버트슨이 보여줄 말러는 어떨지 기대된다.
■눈길 끄는 국내외 연주자·단체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 고악기 '비올론첼로 다 스팔라'를 연주하는 세르게이 말로프, 중국의 생황 연주자 우웨이, 아르메니아 출신 피아니스트이자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협연한 음반으로 화제가 되었던 세르게이 바바얀이 있다.
또 ‘피가로의 결혼’에서 영국 런던 코벤트가든 최초로 남성이 케루비노 역을 맡아 화제가 된 카운터테너 김강민, 2022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우승한 양인모, 2022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첼리스트 한재민, 2022 도쿄 비올라 콩쿠르에서 우승한 박하양도 통영을 찾는다.
이탈리아의 고음악 전문 연주단체 일 자르디노 아르모니코, 에스메 콰르텟, 부산시립교향악단,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등도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만날 수 있다.
이 밖에 카바코스 마스터클래스나 블랙박스 로비에서 양혜규 작가 전시 등도 개최된다. 2023 통영국제음악제 입장권은 통영국제음악재단 홈페이지와 인터파크 티켓에서 살 수 있다. 공연 문의 055-650-0400.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