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해법, “미래지향적 협력” vs “피해자 선택 강요”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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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해법 제3자 변제 사실상 확정
정부, 공동이익 위해 한·일 협력 방점
윤 대통령, 정상회담 통해 정리할 듯
피해자 지원단체 “사법주권 무너졌다”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 발표를 하루 앞둔 5일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인근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주위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정부의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 발표를 하루 앞둔 5일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인근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주위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정부가 ‘강제징용’ 피해 배상 해법을 일본 피고기업의 참여 없는 ‘제3자 변제’ 방식으로 사실상 확정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줄곧 강조해 온 ‘미래지향적 한·일 협력’을 위한 선택으로 보인다.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 전략적으로 공동의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한·일 관계 복원이 과거사 문제로 더 이상 미뤄져서는 안 된다는 판단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은 과거의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로 변했다”고 밝혔다.

이번 강제징용 피해 배상 방안 발표를 계기로 복원될 것으로 보이는 새로운 대일 전략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피해자 측은 그동안 제3자가 재원을 만든다고 해도 피고 기업이 어떤 형태로든 참여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정부도 협상 과정에서 피고 기업의 기여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결국 불발됐다. 이는 피고 기업이 배상 성격을 띠는 어떤 기여도 할 수 없다는 일본의 입장을 넘어설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이 앞으로 피해자 배상 업무를 주관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 기부할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이 경우 일본 기업 기여를 설득하기 위해 정부가 추가 외교력을 투입해야 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쟁점인 ‘사과’와 관련해서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것으로 관측된다. 당시 선언에는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라는 표현이 담겨 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 발표 이후 자민당의 역사 인식 후퇴 등 일본 정치권이 퇴행했다는 점에서 현 기시다 내각이 선언을 재확인한다는 것에는 의미가 없지 않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강제동원 사실 인정’ 등이 담긴 사과를 요구해 왔다는 점에서 기대 이하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28일 외교부가 피해자 유족들을 단체 면담했을 때도 사죄의 필요성을 중시하는 목소리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지원단체는 정부의 공식 발표 후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정부가 피해자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라며 “사법주권이 무너졌다고도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한·일 양국이 공동이익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관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김성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5일 “양측 정상이 만나서 소위 ‘고르디우스의 매듭’(복잡한 문제를 의미)을 푼 직후에 챙겨야 할 현안들을 속도감 있게 다뤄 나가는 절차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도 기시다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통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두 나라 현안을 담판 짓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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