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빗장 풀린 케이블카, 전국 명산 뒤덮나
최대 관심 지리산, 벌써 지자체 간 경쟁 재연 조짐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던 설악산국립공원 내 새 케이블카 설치가 환경부의 조건부 동의를 받으면서 전국의 다른 명산에도 다시 케이블카 설치 논의가 불붙고 있다. 환경부는 최근 강원도 양양군의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조건부 동의 의견을 밝혔다. 1972년에 설치된 기존 권금성 케이블카에 이어 설악산 내 두 번째 케이블카를 허용한 것이다.
상부 정류장의 위치를 하향 조정하는 조건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그동안 환경 훼손 등을 우려하는 케이블카 반대 측의 강력한 반발을 무릅쓰고 내린 결정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환경부의 판단을 주시하던 전국의 다른 지자체들도 서둘러 케이블카 추진 의사를 밝히는 등 곳곳에서 케이블카 논의가 뜨겁다.
40년 만의 설악산 케이블카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논의는 40년 전인 1982년 처음 제기됐다. 제기될 당시부터 찬반 논란으로 뜨거운 감자였던 오색케이블카 설치는 문화재현상변경허가 등 문제로 수년 동안 진척이 없었다. 그러다 2015년 대청봉~관모능성 구간으로 예정했던 노선을 오색지구~끝청으로 변경·보완한 뒤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조건부 승인을 얻으며 속도를 내는 듯했지만, 환경영향평가 조작·부실 의혹이 제기돼 다시 좌절됐다.
이후 몇 차례 더 우여곡절을 겪은 오색케이블카 설치는 지난해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으로 탄력을 받기 시작해 결국 이번에 환경부의 승인을 얻었다. 오색케이블카는 길이 3.3㎞로, 8인승 곤돌라 53대가 시간당 800여 명을 실어 나를 예정이다. 사업비는 1000억 원으로 2026년 완공될 계획이다.
환경부 승인으로 40년 동안의 오색케이블카 논란은 일단 행정적으로는 마무리됐다. 하지만 이는 명산을 끼고 있는 전국 지자체에 ‘케이블카 설치 가능’이라는 새로운 불씨를 던졌다. 벌써 전국 곳곳에서 케이블카 설치 논의가 불붙기 시작한 점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지리산 케이블카’도 재점화
오색케이블카 허용으로 그동안 케이블카 설치를 저울질하던 전국 지자체들도 공식적으로 사업 추진을 밝히고 있다. “국립공원 설악산에도 케이블카가 허용됐는데, 우리 지역이라고 안 될 이유가 없다”며 앞다퉈 나서는 모양새다.
현재 케이블카 설치가 거론되고 있는 지역은 전국 10여 곳에 이른다. 남부권역만 해도 당장 지리산과 울산의 신불산, 부산 황령산, 대구 팔공산을 비롯해 서울의 북한산, 충북 속리산, 광주의 무등산 등 곳곳에 걸쳐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곳은 경남·전남·전북의 3개 도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제1호 국립공원 지리산이다. 지리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논의는 오래됐다. 그러나 사업 주체를 둘러싼 지자체 간 경쟁과 정부의 승인 여부, 환경단체 반발 등 문제로 별다른 진척을 보지 못했다.
우선 경남도가 2012년, 2016년, 2017년 세 차례에 걸쳐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지리산 장터목~함양군 마천면 추성리를 잇는 길이 10.5㎞의 케이블카를 추진했으나, 환경부에 의해 3차례 모두 반려됐다. 그런데 오색케이블카 승인을 계기로 분위기가 바뀌자 박완수 경남지사가 이달 2일 지리산 케이블카 추진 재개를 선언하며 선수를 치고 나왔다.
여기에 최근 전남도와 구례군도 지난해 반려됐던 지리산 케이블카 재추진 의사를 밝히며 가세한 상태다. 예전 독자적인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했던 인근 경남 하동·함양군, 전북 남원시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이들까지 합세할 경우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의 주도권을 놓고 다시 이웃 지자체 간 과열 경쟁이 재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신불산·황령산 케이블카도 시동
울산 울주군도 오색케이블카 승인에 고무돼 있기는 마찬가지다. 20년 숙원인 신불산 케이블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현직 지자체장이 신불산을 포함한 울주 7봉을 산악 대표 관광지로 만들겠다며 신불산 케이블카 설치를 공약한 마당에 오색케이블카 소식은 이 사업 추진에 더 없는 청신호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최근 울주군은 그동안 낙동강유역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의견을 반영한 새로운 현황 조사와 기본설계 등을 바탕으로 신불산 케이블카 설치를 위한 행정절차 진행에 착수했다고 한다. 내년 초 착공, 2025년 하반기 준공이라는 로드맵까지 마련하며 총력전을 펼 기세다.
부산에서도 민간 기업이 도심에 위치한 황령산 정상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 심의에서 안건이 조건부 통과됐는데, 지역사회의 반대 여론 등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대구시의 팔공산 케이블카도 주목 대상이다. 홍준표 시장 취임 이후 불교계와 환경단체의 반발에 밀려 사업을 중단했지만, 최근 케이블카 빗장이 풀리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대구시는 당장 사업 재개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으나, 언제든 사업이 재추진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정부의 명확한 가이드라인 필요
전국에서 케이블카 설치 논의가 봇물 터지듯 나오는 것과 더불어 이를 둘러싼 찬반 논란도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케이블카 설치 논란은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양측 주장의 논점은 그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반대 측의 주된 논거인 환경 훼손 주장과 찬성 측의 관광산업 활성화가 늘 팽팽하게 맞선다. 반대 측은 케이블카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빚어질 환경 훼손과 함께 설치 이후 많은 인파로 인한 자연 생태계의 훼손은 피할 수가 없다고 여긴다. 게다가 자연 공원은 그 자체의 가치를 존중하고 보존할 때 가장 빛을 발한다고 주장한다. 인공물 설치는 근본적으로 여기에 반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찬성 측은 자연환경도 지키면서 지역의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는 데 케이블카 설치는 괜찮은 방안이라고 꼽는다. 정해진 노선을 따라 관광객의 동선을 유도하면 오히려 자연 훼손을 줄이면서도 많은 사람이 편안하게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다. 관광객이 찾아오면서 지역경제도 활기를 띠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양측의 주장은 어느 곳이고 지역 특성에 따른 세부 여건을 제외하면 크게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양측의 팽팽한 주장 사이에서 정부가 뚜렷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일관성 있게 이를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케이블카 입지 선정의 타당성과 재해 위험성 등을 비롯한 환경평가 과정에서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논의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결론을 내리는 데까지 시일이 걸리더라도 논의 과정에 진입 차단의 벽을 치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 케이블카 설치의 빗장이 열린 지금, 전국의 명산을 보존하면서도 지자체의 현실적인 요구를 양립시킬 수 있는 정부의 혜안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