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창업도시 부산, 혁신과 속도에 달렸다
성희엽 부산연합기술지주 대표
복합 위기 속 세계 곳곳 혁신 바람
스타트업 육성·디지털화 추진
영화제 등 글로벌 행사도 융합 모색
부산 미래 위해 해외 벤치마킹하고
창업생태계 주역들 힘 모아 나가야
우리는 지금 코로나와 우크라이나전쟁, 경기침체까지 얽혀 있는 긴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 이 터널 끝에 어떤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돌아보면 우리는 이미 비슷한 터널들을 지나온 경험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 2002년 사스 위기, 2007년 금융위기 등 세 차례의 큰 위기 때마다 벤처기업 육성과 인터넷 보급, 전자상거래 활성화, 스타트업 육성 등 과감한 혁신을 통해 오늘날의 디지털 강국 대한민국을 만들어 온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위기가 깊을수록 우리 부산의 미래에 관해 생각해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스타트업 분야의 해외 사례들에서 시작해 보자.
먼저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이야기이다. 현재의 기시다 후미오 내각은 출범하자마자 ‘새로운 자본주의’라는 기치 아래 스타트업 육성과 디지털화를 주요 정책으로 내걸었다. 이어 스타트업 담당 장관을 임명하고, 4개 대도시에 실리콘 밸리 같은 스타트업 특구 조성 계획과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모두 ‘일본식 성장전략의 대전환’이라고 일컬을 수 있을 정도로 혁신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은 특히 속도 면에서 이게 과연 일본의 정책이 맞느냐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5년 이내에 스타트업 10만 개와 유니콘 기업 100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6월 말 기준 일본의 유니콘 기업 수는 11개로 우리나라(23개)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 스타트업 투자액도 8000억 엔 정도인데, 불과 5년 만에 이보다 10배 이상 되는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0조 엔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제조 대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 등을 활성화시키겠다는 등 구체적인 방법론도 제시하고 있다.
도쿄 역시 일본 정부의 방침에 발맞춰 고이케 유리코 지사가 직접 스타트업 육성 정책에 앞장서고 있다. 야후 재팬 사장 출신인 미야사카 마나부를 부지사로 영입한 데 이어 올해 2월 말에는 부산의 FLY ASIA와 같은 ‘시티 테크 도쿄 2023’이라는 스타트업 행사도 크게 열었다.
한편 민간 분야의 글로벌 혁신 사례로는 단연코 마이크로소프트와 챗GPT를 손꼽을 수 있다. 챗GPT는 그 자체만으로도 누구나 인정하는 디지털혁명이자 거대한 게임체인저이다. 하지만 동시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바로 CEO인 인도 출신의 사티아 나델라이다. 윈도 운영체제의 안정적인 수입에 안주하고 있던 마이크로소프트가 인공지능 분야에서 구글이나 아마존보다 먼저 챗GPT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 지속적인 내부 혁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혁신을 존중할 뿐입니다”라는 말로 그는 임기를 시작했고,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 혁신 정신을 다시 살려냈다.
끝으로 요즘 스타트업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글로벌 행사에도 스타트업 관련 프로그램과의 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와 칸영화제의 마켓 행사는 몇 해 전부터 영화 관련 분야 스타트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는 해마다 다양한 예술 장르와 스타트업 행사가 함께 열리는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라는 초대형 행사가 열리고 있다. 영화와 예술 두 분야는 서로 전혀 다를 것 같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창의와 혁신은 동전의 양면처럼 동일한 정신적 바탕이 있다.
위의 사례들에서 알 수 있듯이 세상은 복합 위기의 긴 터널 속에서도 끊임없는 혁신의 파동을 일으키며 전진해 가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 부산에서도 창업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혁신의 몸부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부산 창업생태계의 다양한 주역들이 좀 더 절박하고 좀 더 속도를 내어 창업도시 부산을 향해 전진해 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혁신과 속도에 모든 것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절박한 마음으로 또 다른 부산을 꿈꿔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