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고개 숙인 한국 야구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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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명품’ 만들어야 재도약의 길 보인다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22일 일본의 최종 우승으로 끝났다. 한국은 WBC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일찌감치 짐을 쌌다. 한국 대표팀이 지난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B조 본선 일본전에서 패한 뒤 환호하는 일본팀을 뒤로하며 어두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22일 일본의 최종 우승으로 끝났다. 한국은 WBC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일찌감치 짐을 쌌다. 한국 대표팀이 지난 10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B조 본선 일본전에서 패한 뒤 환호하는 일본팀을 뒤로하며 어두운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일본의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3회 연속 본선 1라운드 탈락. 한 수 아래라던 호주한테 덜미를 잡히더니 ‘라이벌’ 일본에 9점 차로 대패했다. 기대 이하다. 어떤 이는 이게 한국 야구의 진짜 실력이라 했다. 냉소가 아니다. ‘야구 변방’은 정확한 진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패를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한국 프로야구가 4월 1일부터 정규 시즌을 시작한다. KBO(한국야구위원회) 리그의 품질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거기에 한국 야구 중흥의 길이 있기 때문이다.


WBC서 확인한 ‘우물 안 개구리’

한국 야구의 부진은 무엇 때문일까. 먼저 투수력 하락에 방점이 찍힌다. 호주에게 8실점 하고 일본에 13점을 내줬다. 체코·중국한테도 각각 3실점과 2실점을 기록했다. 베테랑 투수들은 상대팀에게 철저히 분석 당했고, 새내기들은 공을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 요약하면, 노쇠함과 경험 부족 탓이 크다. 그 뒤에 ‘자만’이 도사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스피드 업’은 근래 세계 야구의 트렌드다. 한국 야구는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일본 투수들은 시속 150km 이상의 빠른 볼을 우습게 던졌는데, 특유의 제구력도 여전했다. 한국 투수들은 극소수를 빼곤 그렇지 못했다. 스트라이크든 볼이든 원하는 곳에 투구하는 능력이 부족했다.

야구는 기본기다. 두말하면 잔소리다. 한국은 여기서도 구멍이 났다. 어이없는 주루사와 주루 미스가 득점 기회를 번번이 날렸다. 수비에서도 기초적인 실수가 나왔다. 평범한 송구와 포구를 잘 못해 실점의 빌미를 만들었다.

한국의 WBC 조기 탈락은 벌써 세 번째다. 더 이상 불운 탓을 말할 수 없다. 2017년 한국의 발목을 잡았던 이스라엘이나 이번 대회의 호주는 약체로 평가받은 팀이었다. 100경기 이상을 치르는 프로야구 리그도 없고 이름값 높은 메이저리거도 없는 나라다. 심지어 동호회 야구 체코에도 혼쭐이 난 한국 야구다. 이게 무슨 일인가.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일본도 한국 야구로부터 배웠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일본은 한국에 두 번이나 지면서 노메달의 망신을 당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던 모양이다. 좌절과 반성이 없으면 절치부심도 없는 법. 일본 야구는 결국, 세계 정상급으로 거듭났다. 우리도 실패를 거울삼아 근본적인 대안들을 찾아야 한다. 눈앞의 성적에 연연해하지 말고 멀리 내다보는 거시적 관점을 세우는 게 먼저다.

야구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선 국가대표 전임 감독제에 대한 재검토 목소리가 높다. 전임 감독제는 2017년 도입됐다가 곡절 끝에 2022년 폐기됐다. 과거를 돌아본다. WBC 준우승을 일군 김인식 감독은 정작 자신의 KBO 소속팀은 신경 쓰지 못했다. 올해 이강철 감독도 대표팀과 소속팀 양쪽으로부터의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전임 감독제의 장점은 축구 국가대표 감독을 생각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젊은 인재를 발굴하고 순조로운 세대교체를 준비하면서 장기적 로드맵을 짜는 지도자의 역할이 그것이다. 국제대회에 자주 나가 경험을 쌓는 것도 중요한데 그런 점에서도 전임 감독제는 유리하다. 세계적 추세와 변화하는 규정에 발 빠른 대처도 가능하다.

그 밖에도 야구 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외국인 선수 제한 완화, 정기적 국가 대항전 개최, 고교야구 알루미늄 배트 부활 등이 거론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엇갈리는 사안도 없지 않다. 과학적 검증과 연구를 통해 장단점을 충분히 살피는 진중함이 요구된다.


KBO 리그 '질적 향상'이 해답

한국 야구의 중심축은 엄연히 프로야구다. WBC에서 호성적을 바란다면 KBO 리그를 잘 가꾸면 된다. 프로야구가 재미있고 풍성해지면 관중이 많이 찾을 것이고 그러면 선수층도 두터워져 실력도 높아진다. 당연한 얘기다. WBC 같은 국제대회 성적은 저절로 따라온다.

KBO 리그는 2017년 역대 최다인 840만 명의 관중을 동원했다. 그러나 2018년(807만 명)을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엔 600만 명을 간신히 넘겼다. 팬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불러들이려면 KBO 리그가 제대로 된 경기력을 보여 줘야 한다. 아니면 프로야구마저 소수의 팬들이 즐기는 ‘마니아 스포츠’로 전락한다. 결국 질적 수준의 향상이 관건이란 얘기다. 세계 정상급으로의 발돋움도 그래야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기반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자금과 인프라, 인재 육성, 선수 복지, 팬 참여 확대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다. 야구 선진국인 미국과 일본의 프로야구가 그렇다. 현대적 편의시설과 첨단 기술, 팬들을 위한 안락함을 갖춘 경기장 등 일단 하드웨어가 훌륭하다. 선수들의 과도한 몸값에서 거품을 빼고 이를 잘 활용한다면 우리나라도 인프라 개선의 묘책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선수 발굴에 통 큰 투자를 마다하지 않는 시스템도 눈여겨볼 만하다. 유소년 리그라든지 스카우트 프로그램 등은 한국 야구가 인재 육성에 충분히 반영할 만한 내용들이다. 선수 복지 개념도 마찬가지다. 연령별 투구 수 제한, 부상 방지 프로그램처럼 선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는 엄격한 규정이 돋보인다. 다채로운 축제와 소셜 미디어 캠페인을 개발해 야구팬들을 관리하고 참여 확대를 유도하는 적극적인 노력들도 참고할 만하다.


튼튼한 기초와 철학적 소신을

한국 야구의 저변은 여전히 얇다. 어쩔 수 없이 이웃 일본과 비교하게 되는데 열악한 처지는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2020년 일본 전역에 야구부가 있는 고교는 3940곳(야구 등록 선수 15만 명), 한국은 올해 기준으로 95곳에 불과하다.

지금 한국 아마 야구의 현장엔 위기감마저 감돈다. 저출생에다 코로나 사태가 겹쳐 유소년 야구 선수가 태부족해서다. 특히 초등학교 야구부가 크게 줄었다는 게 문제다. 중학교 선수들이 프로에 입단하는 4년 뒤엔 신인 지명에서 우수 선수를 찾아내기 힘들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선수 부족이 야구 발전의 발목을 잡는 것보다 서글픈 풍경도 없을 것이다.

한국 야구의 뿌리는 아마 야구다. KBO가 선수 발굴과 구장 인프라 보강 등 아마 야구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 백 마디 말보다 단 한 번의 실천이 절실한 때다.

선수와 지도자들의 노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야구라는 몸의 제전을 손수 만드는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올바른 훈련과 신기술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선수들은 존재의 본질을 구현하는 사람으로서 직업적 소명 의식을 다지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야 한다. 철학적 소신, 반성과 성찰 같은 무형의 덕목이야말로 인프라와 경제성, 리그의 품질보다 더 소중한 가치다. KBO 리그 운영, 선수들의 노력, 팬들의 사랑, 이 삼두마차가 끌고 가는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기대한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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