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로 처음 온 제주도 “또 날아서 오자꾸나”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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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뇌병변복지관 장애인 19명
보호자와 함께 2박 3일 제주도행
휠체어 행렬에 주변 시선 몰려도
비행기 탑승 여행에 행복한 시간

부산에 거주하는 30~60대 성인 뇌병변장애인과 보호자, 사회복지사 등이 지난 22~24일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제주 서귀포시 제주민속촌 유채꽃밭에서 뇌병변장애인 한성재(42) 씨와 어머니 박명종(74)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부산에 거주하는 30~60대 성인 뇌병변장애인과 보호자, 사회복지사 등이 지난 22~24일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떠났다. 제주 서귀포시 제주민속촌 유채꽃밭에서 뇌병변장애인 한성재(42) 씨와 어머니 박명종(74) 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 22일 낮 12시 항공기가 제주공항에 가까워지자 40대 여성 승객이 통로를 지나는 승무원에게 “우리가 먼저 내리는 거 맞죠”라고 묻는다. 질문이지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여기서 ‘우리’는 휠체어를 타고 온 뇌병변장애인과 보호자 30여 명을 제외한 비장애인 승객을 뜻했다. 같은 비행기에 탔지만 장애인 일행이 함께 움직이면 불편하고 늦어지기에 ‘우리’에서 배제됐다.

22~24일 부산의 30~60대 성인 뇌병변장애인 19명이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보호자, 사회복지사 등까지 합치면 일행은 총 42명. 휠체어는 총 15대였다. 이 중 비행기를 탈 수 없는 2명은 7시간에 걸쳐 배를 타고 제주에 도착했다. 직계 보호자는 평균 60~70대로 모두 여성이었다. 부산뇌병변복지관이 여행을 진행했고 KRX국민행복재단,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이 지원했다. 20~30대 성인과 아동 장애인은 29일 2차로 제주도 여행을 떠난다. 비장애인에겐 나들이 수준 일정이지만 총 88명의 장애인 단체 제주도 여행은 간절하지만 불가능해 보인 꿈이었다.

제주도에 새겨진 휠체어 자국은 그 자체로 선언적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내리는 일부터 쉽지 않았다. 좁은 통로, 복잡한 수속 절차 때문에 휠체어에서 일어섰다, 앉기를 반복했다. 팔다리가 자유롭지 않아 고령의 보호자와 승무원이 들고 놓기를 반복했다. 비행기에서 내릴 즈음, 모두가 이미 지친 표정이었다. 이주은 부산뇌병변복지관 관장은 “비행기가 처음인 이도 있다. 학창 시절 경험이 마지막인 장애인이 대부분”이라며 “뇌병변장애인이 단체로 비행기에 탑승하는 일 자체가 너무 힘든 거대한 벽이었지만 그걸 넘어선 날이었다”고 말했다.

오후 1시 빗방울이 맺힌 제주공항 야자수 앞으로 휠체어 15대가 한 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파란 틴트 선글라스부터 원색의 화사한 옷 등으로 단장한 이들은 벌써 피로를 잊은 표정이다. 여기가 제주도라는 것을 믿을 수 없는 듯 들떠 보였다. 보호자인 어머니들의 얼굴에도 뿌듯함에 함박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첫 번째 방문지인 해녀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안재우(38) 씨가 노래를 흥얼거렸다. “비바람 불면 당신 두 손을 내가 붙잡고 가고”라는 노랫말이 또렷하게 들렸다. 다른 이들도 발로 바닥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노래와 발 박수 그리고 빗소리가 버스를 가득 채워 분위기를 띄웠다.

뇌병변장애인들은 사흘간 제주민속촌, 서귀포 치유의 숲, 범섬 등을 둘러보고 옥돔, 보말칼국수 등 제주의 맛을 느꼈다. 세계 일주를 한들 이들의 2박 3일보다는 값지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하영자(62) 씨는 “누군가는 힘들게 휠체어를 끌고 제주도까지 왜 여행을 가냐고 묻는다.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가 있지 않느냐”고 웃으며 말했다.

여행 둘째 날 서귀포 치유의 숲의 오르막을 오르던 한성재(42) 씨의 휠체어가 잠시 멈췄다. 어머니 박명종(74) 씨가 숨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박 씨는 “휠체어를 탄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이렇게 넓고 깊게 다른 차원을 볼 수 있다”며 “힘들어도 같이 여행하면 참 재미있는데 내가 나이가 많아 더는 못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사흘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다들 비행기를 타러 다시 제주공항에 모였다.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는데 다들 아쉬움, 만족감, 행복감 등이 교차하는 복잡 미묘한 표정이었다. 깊은 생각에 빠진 것 같던 박 씨는 아들을 향해 “‘우리’라서 즐거웠다. 다음에 또 오자. 그때도 재밌게”라고 말했다. 아들은 시원하게 이를 보이며 웃음으로 답했다.

글·사진=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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