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기본조례 제정’, 부산시민 직접 나섰다
시민사회단체, 주민 발안 추진
보호자 가족·여성인 현실 개선
돌봄, 개인보다 공적책임 강조
5만 명 뜻 모아 시의회에 청구
“돌봄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이기에 돌봄 정책의 제도화는 꼭 필요합니다.”
지난 22~24일 2박 3일 일정으로 제주도 단체 여행(부산일보 28일 자 1면 보도)을 다녀온 뇌병변장애인의 보호자이자 어머니인 문해숙(62) 씨는 돌봄의 공적 책임을 강조했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 함께한 모든 보호자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사회복지사를 제외하면 뇌병변장애인 보호자는 모두 평균 60대 중반인 어머니였다. 돌봄 노동은 가족이 계속 책임져야 하고, 그중 대부분은 여성의 몫으로 남는다는 현실을 보여 줬다.
부산의 시민사회단체가 ‘돌봄 기본 조례 제정’을 위해 직접 팔을 걷고 나섰다. 돌봄이 필요한 부산 시민이면 누구나 ‘좋은 돌봄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부산참여연대, 부산뇌성마비장애인 부모회, 사회복지연대 등 부산지역 36개 시민사회 단체가 모인 ‘돌봄 기본 조례 제정을 위한 주민 발안 추진위원회’는 28일 오전 11시 부산시청 광장에서 발대식을 열었다. 추진위는 이날부터 오는 9월까지 시민 5만 명 청구인을 모집해 부산시의회에 돌봄 기본 조례 제정을 청구할 계획이다.
이들이 추진하려는 조례는 ‘돌봄의 사회화’를 핵심으로 한다. △부산 시민의 좋은 돌봄 생활을 위한 공공성, 전문성, 안전성에 대한 시의 공적 책임 명시 △돌봄 생활을 위한 기반 구축 △중장기적인 돌봄 지원 방안을 위한 실태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긴급 위기 상황에서도 돌봄권 보장 등의 내용을 명시할 예정이다.
추진위는 돌봄에 대한 지자체의 공적인 책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결성됐다. 앞서 코로나19라는 팬데믹 상황에서 시를 포함한 행정기관은 돌봄서비스 제공을 책임지던 기관·시설을 폐쇄한 바 있다. 여성, 장애인, 노인 등 돌봄이 필요한 이에게 사회적 위기는 더 치명적으로 다가갔다. 돌봄 책임은 오롯이 개인과 그 가족에게 전가됐고 각자 생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추진위는 “340만 시민이 생활하는 부산에서 돌봄은 보편적 기본적 권리로 이해되기보다 개인과 가족의 차원에서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서비스로 취급됐다”며 “특히 팬데믹은 돌봄 필요의 사회화, 돌봄 대응의 개별화라는 부산의 모습을 보여 줬다. 이와 같은 문제를 반복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대의기관을 통하지 않고 주민 발안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은 부산 시민이 전면에 나서 시민 권리를 선언하기 위해서다”라며 “시 돌봄 기본 조례를 제정하는 모든 과정에서 부산 시민과 함께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지난해 시행된 주민조례발안법에 따르면 선거권이 있는 만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조례청구를 할 수 있다. 인구 800만 명 미만 광역시인 부산에서는 선거권이 있는 시민 가운데 150분의 1, 즉 1만 9342명 이상이 서명하면 조례 청구 요건을 갖추게 된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