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현수막에 그린 ‘지금, 여기’의 욕망과 풍경 [전시를 듣다]
방정아 개인전 ‘욕망의 거친 물결’
부산 신세계갤러리 4월 16일까지
송도해수욕장·영도 양다방 등 배경
청년 현실 다룬 ‘백작 놀이’ 연작도
아트 팝업에선 작품 영감 굿즈 선봬
현대인의 삶은 욕망과 함께한다.
방정아 작가는 “생각해보니 우리는 항상 욕망 안에 놓여져 있더라”고 했다. 방정아 개인전 ‘욕망의 거친 물결’은 이 욕망의 순간을 직시한다. 방 작가는 부산을 기반으로 30년 이상 회화 작업을 해 온 중견 작가이다.
부산 해운대구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 6층 신세계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면 세로 5.6m, 가로 9.7m 크기의 폐현수막 그림이 기다린다. ‘욕망의 거친 물결’이다. “처음에는 탐욕이나 자신의 범위를 넘어서는 욕심, 그에 대한 경계심을 표현하려 했는데 작업하다 보니 욕망에 여러 범주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전시에는 동명의 작품 ‘욕망의 거친 물결’ 두 점이 등장한다. 폐현수막 그림과 그것의 모태가 된 캔버스 작품이다. 방 작가는 “모태 작업이 흙탕물 속에서 사람들이 떠밀려 가면서 허덕이는 모습이었다면, 폐현수막에 옮겨 그린 것은 좀 상쾌해졌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내가 똑똑하게 뭔가를 결정한 척하지만 알고 보면 시스템 안에 있는 거죠. ‘동의’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결제도 마음대로 못 하잖아요. 욕망에 떠밀려 가지 않겠다고 자신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내가 욕망에 휩쓸려 가고 있다는 걸 알 필요가 있죠.” 욕망에 대한 가치 판단보다는 현 상태를 인지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는 설명이다.
2021년 방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하며 광목천을 이어 붙인 작품 ‘플라스틱 생태계’를 선보였다. “직접 천을 사서 박음질하는 대신 폐현수막을 이용해보자 싶었죠.” 환경오염으로 생태계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림 그리는 행위가 나약하게 느껴졌다는 작가는 ‘그럼 쓰레기라도 줄여 보자’고 생각했다. “폐현수막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그림과 부딪치지 않도록 노력했죠. 폐현수막을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다르고 설치를 할 때 그림이 앞으로 쏟아지는 느낌을 주고자 했어요.”
방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드세다”고 했다. 드센 그림 속 등장 인물이 은근히 작가의 주변인을 닮아 있다. “상상의 인물인데 그리고 보면 닮아 있더라고요. 신작 ‘백작 놀이’ 시리즈는 실제 모델이 있어요.” 작가는 알고 지내던 젊은 친구들이 서로를 ‘백작’ ‘공작’으로 부르며 노는 것을 봤다. ‘백작 놀이’를 하는 그들에게서 작가는 이 시대 청년의 모습을 발견했다.
“일을 마친 뒤 편의점 앞 노천 테이블에서 캔맥주를 마시는 게 낙이라고 하더라고요.” 청춘들의 짧은 휴식은 작품 ‘결심에 대한 이야기’나 ‘해풍, 결심들’에 담겼다. “팍팍한 현실을 조롱하다가 성공과 꿈을 이야기하기도 했죠. 안쓰러우면서도 그들이 가진 가능성을 동시에 봤어요.”
방 작가는 작품에 자신이 사는 부산의 장소를 녹여낸다. 호랑이 인형을 안고 있는 백작, 공작, 후작(방 작가)이 그려진 작품 ‘백작놀이’는 영도 양다방이 배경이다. 두 인물이 바닷가에 앉아 있는 ‘철퍼덕’은 송도해수욕장으로 멀리 송도해상케이블카가 보인다. 작품 ‘열정을 대한 태도’는 태국 푸켓을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표현한 그림이다.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하는 것을 선호해요. 그림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비현실적이지만 ‘지금, 여기의 이야기’가 바탕에 깔리는 거죠.” 또한 방 작가는 작품 제목도 구체적인 것을 선호한다. ‘웅크린 표범여자’ ‘봄의 울퉁불퉁함’ 등이 그 예이다. “개인적으로 언어유희를 좋아해요.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면서 제목을 바로 쓰는 편이에요.”
‘욕망의 거친 물결’전은 4월 16일까지 이어진다. 신세계 센텀시티 1층 서관 통로에서는 방정아 작가의 그림, 판화와 함께 방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아트 콜라보(부산일보 3월 3일 자 6면 보도) 굿즈도 감상할 수 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