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의료 위기 빠뜨린 간호법, 누구의 책임인가
김충기 이대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는 간호법안은 보건복지 및 복지 체계 개선의 필요와 지역사회 돌봄 체계의 구축 등을 들며 숙련된 전문 간호 인력의 필요성과 처우 개선을 목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교묘한 진실과 거짓이 혼재한다. 김민석 국회의원의 간호법안은 현재 의료법이 규정하는 간호사의 업무 중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하에 시행하는 진료의 보조’를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하고 요양보호사의 업무에 대한 지도를 추가했다.
요양보호사에 대한 지도 권한을 부여하는 것 또한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간호사의 권익 향상만을 위해 요양보호사의 전문성을 침해하는 내용이 아니라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간호협회는 전체 간호 인력의 처우를 향상시킬 수 있는 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여타 보건의료 종사자들은 전례없이 일제히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일례로 간호법 대상인 간호조무사협회는 법 제정 반대의 최전선에 나섰다. 간호사만을 위한 법으로 인해 지역 보건의료에 기여하고 있던 간호조무사들의 생존권이 위협받을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보다 높은 수준의 간호 인력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간호조무사의 자격이 고졸 이상으로 높아지는 것을 적극 반대하고 있는 간호협회의 주장은 자가당착의 전형을 보여준다. 결국 지금 간호법의 의미는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의료인의 역할과 처우 등을 규정하는 기존의 법률로부터 벗어나 간호사는 의료인 외의 범주에서 홀로 존재하겠다는 의도, 그리고 간호사들만의 독자적 영역 확장에 대한 분명한 의지와 그 핵심이 ‘지역사회 돌봄’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건의료나 복지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의 역할이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간호법이 과연 이러한 극렬한 갈등을 감내할 만한 높은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간호협회는 법이 제정되면 간호 업무의 특성을 반영한 근무 개선이 가능하고 간호사만이 아니라 다른 직종의 처우 개선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거짓된 주장을 내놓았다. 이에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들은 간호협회가 보건의료, 복지 전반에 있어 간호사들의 업무 영역만 확대하고 다른 직종의 전문성과 역할을 침해하고 있다며 격렬한 반대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간호법 제정 반대에 뜻을 모으고 있는 13개 단체 보건의료연대는 이미 벌어지고 있는 간호사들의 업무 범위 침해의 정도가 법 제정 이후 더욱 심각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은 사회 갈등을 중재해야 할 정치권은 오히려 이 혼란을 더욱 조장하고 있다. 보건의료 인력들의 조화와 협력에 심각한 균열을 야기할 수 있는 이러한 법이 과연 지역사회의 복지 향상에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심지어 의료 현장에서 헌신하고 있는 간호사들의 권익 향상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은 이 법에 전혀 없다.
실상 의료복지 기관 운영을 주도할 수 있는 소수의 유력자들의 배를 불리거나 간호단체 리더들의 정치적 성과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법사위 정점식 위원의 표현대로 ‘이쪽저쪽에 있는 법안들을 뜯어와 가지고 때려 넣은 간호법’에 다름아니게 되었으며, ‘간호협회의 극단적인 이기주의’라는 직설적 비판도 나오고 있다.
보건의료 사회의 격렬한 갈등을 부추기며 기어이 법안 추진을 멈추지 않고 있는 정치인들의 오만함을 기억해야 한다. 그 덕분에 우리 사회는 또다시 보건의료의 어지럽혀진 질서와 혼란을 마주하고 있으며 그 사회적 비용이 온전히 국민들에게 청구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주체들에게 어떻게 책임을 준엄하게 물을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