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함께 살아가는 힘
영화평론가
29일 개봉 영화 ‘오토라는 남자’
아내 죽음으로 의욕 잃은 주인공
이웃들 관심으로 마음 열기 시작
톰 행크스와 아들, 같은 인물 연기
오전 5시 30분 눈을 뜬 남자가 출근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선다. 걷는 길마다 뭐가 그리 못마땅한지 잔소리를 늘어놓지만 아무도 그의 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남자가 도착한 곳은 그의 직장이다. 오늘은 ‘오토’의 마지막 출근 날이다. 그는 자신의 후임이 상사가 되자 평생을 다녔던 회사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그런데 마지막이 무색하게도 그는 서운한 기색이 전혀 없어 보인다.
다만 오토는 오늘을 위해 특별한 준비를 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집 전기를 끊었고, 전화도 해지했다. 마트에 들러 밧줄을 구매하는 등 세상과 이별할 준비를 마쳤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창문 너머로 차 한 대가 들어서면서 그의 특별한 준비를 모두 틀어지게 만든다. 오토의 앞집으로 이사 온 가족은 오토가 ‘극단적인 선택’을 준비하면 사다리나 공구를 빌려달라 했다. 병원까지 운전을 해달라는 등 소소한 부탁을 해오며 오토의 선택을 유보시킨다. 삶의 의욕을 상실한 한 남자에게 오토의 이웃이 살아가야 할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오토는 투덜대고 짜증을 내면서도 그들의 부탁을 들어준다.
오토가 무엇을 하는지 어딜 가는지만 알아도 몇 시인지 알 수 있을 만큼 그는 정확한 시간과 규칙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분리수거를 잘못한 사람에게 지적하고, 지정 거치대가 아닌 곳에 자전거를 댄 사람에게 면박을 주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동네 주차 단속 따위에 진심인 그의 모습은 어찌 보면 답답해 보인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보고 ‘꼰대’라고 부르고, 오토는 그들을 ‘머저리’라고 부른다. 그는 세상과 소통하려 하지 않는 듯 귀를 닫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꽉 막힌 꼰대가 아니다. 오갈 데 없는 고양이를 품어 안을 줄 아는 따듯한 인물이지만 영원히 지켜줄 수 없기에 밀어낼 뿐이다.
오토는 6개월 전 사랑했던 아내를 떠나보냈다. 자신의 인생이 행복으로 충만할 수 있었던 이유는 ‘소냐’ 덕분이었다. 소냐의 죽음 이후 오토의 세상은 흑백으로 변했고,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로 인해 영화는 오토의 행복했던 과거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며, 왜 지금 오토가 이렇게 괴팍하고 무뚝뚝한 남자가 됐는지를 알려준다. 그리고 이때 그의 닫힌 마음을 열고 들어온 이들이 바로 그의 곁에 있던 ‘이웃들’로 설정된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있다고 믿지만, 영화 ‘오토라는 남자’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과거가 아무리 행복했다고 한들 과거에서 영원히 살 수 없는 법. 그는 현재에 살기를 당부한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의 온기를 느끼며 ‘함께’ 사는 법을 일깨운다. 영화를 보는 내내 포근함이 느껴지는 데 그건 별 게 아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위로와 공감을 나누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부동산 회사라는 거대 자본에 집을 빼앗길 위기에서 공동의 힘을 모으는 과정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충분히 담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멕시코 출신 이민자, 질병으로 힘겨워하는 노부부, 독거노인, 트랜스젠더 등 소수자들 모습을 비추며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는 스웨덴 작가 프레드리크 배크만의 장편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배경이 미국으로 바뀌면서 등장인물 이름과 주요 사건 등이 각색됐지만 원작 메시지는 변하지 않았다. 특히 ‘오토’ 역을 배우 톰 행크스가 연기하는데, 재미있는 건 젊은 오토 역을 그의 실제 아들인 트루먼 행크스가 맡았다는 점이다. 닮은 듯 개성 넘치는 두 ‘오토’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봄에 가슴 벅차는 일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