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육아 모임서 만난 동거녀
남편 폭력에 조언하며 신뢰 쌓아
도망치듯 나온 친모에 동거 제안
동거 길어지며 성매매 요구 계속
성매매 주변에 알리겠다 협박에
믿었던 동거녀 제안 모두 수용해

친모 A 씨가 지난해 12월 4세 딸을 안고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는 장면. 부산일보DB

4세 여아 ‘가을이(가명)’가 가스라이팅 성매매 착취와 아동학대의 일상 속에서 희생되는 과정이 처음으로 친모와 주변인 등에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친모가 보호자에서, 성매매 착취의 피해자, 잔혹한 학대의 가해자로 변하는 모습은 개인의 나약함과 탐욕, 사회적 방치의 결과가 순차적으로 더 약자에게 전달되는 과정이었다.

29일 친모 A(27) 씨가 <부산일보>로 전달한 서신과 주변인들의 증언 등을 종합해 보면, 가을이와 A 씨는 최근 3년 사이 장기간 외부와의 단절된 상태였고, 특히 A 씨가 가해자로 변화 뒤 가을이는 완전한 외톨이가 됐다. A 씨는 “모질고 멍청한 엄마였다”며 가을이를 방치하고 나아가 학대를 하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경북 출신인 A 씨는 부모의 사정으로 장기간 조부모 밑에서 자랐고 형편상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곧바로 물류센터 등에서 일을 했다. 이에 대해 검찰 등도 “불우한 환경”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20대 초반 A 씨는 남편을 만나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첫 아이에 이어 둘째 가을이도 얻었다. 이후 부부간 불화가 커졌고, A 씨는 남편의 물리력 행사를 신고한 뒤 두 아이를 데리고 쉼터로 도망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도 이 과정을 “가정폭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현실적으로 계속 쉼터에 있을 수 없었다. A 씨는 곧 남편에게 돌아갔으나, 또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결국 도망치듯 가을이를 데리고 나왔고 남편과의 관계는 끊어졌다. 이 과정에서 A 씨가 공공기관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쉼터 등에서 후속 관리가 이뤄졌다면, 가을이는 부산으로 오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부부 간 불화는 동거녀 B 씨와의 관계가 급속히 발전하는 계기였다. 온라인 육아 모임을 통해 알게 된 B 씨는 가정 불화에 적극적인 대처를 권유했다고 한다. A 씨는 “B 씨와 가정형편, 남편과의 사이 등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부산 동거 전부터 시작해 B 씨에 대한 신뢰는 상당했던 셈이다.

이렇게 2020년 8월 가을이와 A 씨는 부산 B 씨의 집으로 들어갔다. B 씨가 도와주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A 씨는 “남편도 있는데 선뜻 가기가 망설여졌지만, 고맙기도 하고 가을이랑 잘살아 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이때만 해도 A 씨의 모성애는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동거가 장기화되면서 생활비 마련과 자립을 위해 A 씨는 수개월간 서빙, 단기 알바, 보험 일에 나섰다. 하지만 싱글맘의 수입은 불규칙하고 생활비를 벌기에 부족했다. 미혼모나 싱글맘에 대한 정부 지원책이 있지만,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정리되지 않은 남편과의 관계가 있어 지원 대상이 되기 어려웠다.

그즈음 B 씨의 성매매 제안이 있었다. A 씨는 “그 말을 듣고 너무 서러웠지만 유일하게 믿고 의지할 사람은 B 씨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를 설명했다. B 씨가 어떤 일인지 설명해주고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는 게 A 씨의 주장이다.

2021년 7월부터 성매매가 시작됐다. 2022년 12월까지 2410회의 성매매 1억 2000만 원 상당의 성매매가 이었던 것으로 추산된다. 같이 빚을 갚자는 제안에 수익은 모두 B 씨가 챙겼고, A 씨는 전화도 허락을 받아야 할 정도로 감시를 받았다. A 씨는 “돈을 버는 즉시 B 씨가 전부 가져갔다”며 “어디를 가든, 누구랑 연락하는지 전부 간섭했다”고 당시를 기억상했다.

납득이 안 되는 이 관계를 수사기관은 가스라이팅이라고 판단했다. A 씨의 친인척은 “통화를 하는데 ‘나도 B 씨처럼 뭐든 똑 부러지게 잘 하면서 정상적인 가정을 일궈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찬양하듯이 말했다”고 밝혔다. A 씨에게 B 씨는 신뢰의 대상을 넘어 일종의 정신적 이상향이었다. 여기에 성매매 사실을 주변에 알릴 수 있다는 협박도 있어 모든 걸 수용했다는 게 A 씨의 증언이다.

엄마가 삶의 주체성을 상실한 피해는 결국 가을이가 짊어졌다. 성매매가 시작될 즈음부터 A 씨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본격적으로 딸에게 풀기 시작했고, 500여 일 지난 지난해 12월엔 결국 폭행 뒤 방치해 숨지게 했다.

이와 관련 A 씨는 “B 씨가 아이 훈육하는 법도 가르쳤다”고 밝혔는데, 향후 아동학대 책임에 두 사람의 법적 다툼이 예상된다.이들의 잘못을 짊어졌던 가을이는 지난해 12월 사망 뒤 부검 과정을 거쳐, 친부에게 인계됐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