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제국 이후 중국 현대화 400년 궤적을 보다
현대 중국의 탄생/클라우스 뮐한
청, 18세기 세계 인구 3분의 1 지배
서태후의 세제 개혁·신식 군대 창설
중국의 현대적 정치 의제 형성 ‘시각’
20세기 ‘민족주의’ 키워드로 새 시대
정치 개혁, 중국의 가장 큰 과제 남아
<현대 중국의 탄생>은 1644년 청 제국부터 시진핑이 집권 중인 2017년까지 중국 현대사 400년을 900여 쪽에 개설한 책이다. 이 분야에서 페어뱅크 <신중국사>와 조너선 스펜서의 <현대 중국을 찾아서>의 선구적 업적을 대체할 새로운 표준 입문서라고 한다.
표준 입문서의 가장 큰 특징은 균형 잡힌 시각이다. 광범위한 연구 성과를 종합해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는 거다. 나아가 무엇보다 역사는 새롭게 보는 이의 몫이며, 아니 새롭게 만드는 이의 가능성의 영역이라는 점을 느낄 수 있다. 흔히 오늘날 중국의 부상을 1978년 덩샤오핑 집권 이후 40여 년 동안 이뤄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 책은 청 제국의 제도에 현대 중국의 가능성이 이미 내재돼 있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현대 중국의 가까운 뿌리로서 청 제국은 가장 강하고 부유하며 정교한 유라시아 제국이었다는 거다. 강희제(61년 재위) 건륭제(60년 재위)로 대표되는 청 제국은 18세기 중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세계 인구 3분의 1을 지배했고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를 운용했다. 한족이 아니라 만주족-여진족이 만든 나라가 그랬다는 거다. 이 시대에 존재했거나 만들어졌던 사회와 문화의 기본 제도들이 19~20세기 중국의 역사 궤도와 정치적 선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거다.
알다시피 중국은 1830년 이후 깊은 위기에 빠졌다. 그것은 중국의 왕조들이 겪어왔던 흥망의 패턴을 여지없이 닮았다. 당 송 원 명 모두 그랬다. 역시 안으로 태평천국의 난이 사회 구조를 무너뜨렸으나, 다른 점이 있다면 밖으로 제국주의 침탈인 아편전쟁의 큰 한 방으로 청은 급격한 추락에 직면했다.
하지만 1870년 이후 중국은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줬다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무엇보다 영토를 대체로 온전하게 유지했다는 거다. 청 제국의 영토는 중국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였다. 광대한 땅덩어리, 그곳의 어마어마한 인구는 현대 중국의 물질적 토대가 된 거다.
중국은 그런 토대 위에서 1900~1949년 회복과 국가적 각성을 경험하면서 개혁 혁신 혁명의 시대를 맞았다. 아주 독특한 시각의 하나는 서태후의 새 정치가 정치체제와 법률 개혁, 입법부, 지방선거, 법원 체계, 고등교육, 경제·금융 정책, 교통 개선, 외교 사무, 세제 개혁, 신식 군대 창설로 중국의 현대적 정치 의제를 형성했다는 거다. 흔히 서태후가 나라를 말아먹었다고 말하지만, 이 책은 1900년 이후 10년간 시기에 야심적 개혁의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고 한다. ‘신정(新政)의 시기’가 그것이다. 대담한 제도 혁신은 너무 늦게 시작돼 제국을 구하는 데는 실패했으나 새로운 중국을 형성시켰고,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사회의 급진화를 초래했다고 한다.
결국 이 채근 19세기 중국의 몰락은 경악스러웠으나, 20세기 중국은 혁명, 전쟁, 민족주의 키워드로 하는 새 시대를 향해 나갔다는 거다. 이 책은 중국의 역사적 장점, 요컨대 전근대 중국 제도의 상대적 정교함, 교육과 능력주의에 대한 강조, 관료제와 같은 복합적 행정·경제 체계를 운영한 경험 등을 부각하는 거다.굴욕은 통합하는 힘으로, 수치는 새롭고 현대적인 국가 정체성을 건설하는 데 자극이 됐다는 거다.
중국은 아주 다양한 메뉴를 선별해 제도를 개혁해왔다고 한다. 입헌 군주제, 공화제, 군벌의 군사독재, 1930년대 중국판 파시즘, 1950년대 스탈린주의, 그 중국적 변형인 1960년대 마오주의 등을 실험하면서 좌충우돌하면서 느리게 서서히 성장하고 있었다는 거다. 그 토대 위에서 중국은 1978년 덩샤오핑의 포용적 경제 제도가 도입되면서 진정으로 이륙의 날개를 폈다고 한다. 1980년대 개혁의 초점은 시장경제의 부흥과 농업 성장이었고, 1990년대 초점은 국유기업의 민영화와 이익 지향적 기업의 전환이었다. 중국의 부상은 행정 경험, 정교한 시장, 교육 유산과 같은 역사적 뿌리에 의존하고 있다는 게 이 책이 계속 강조하는 시각이다.
그러나 중국은 기로에 서 있다. 중국의 부상은 부분적이고 미완인데 직면한 가장 큰 과제가 정치 개혁이라는 거다. 권위주의적인 일당 국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빠르고 전례 없는 성장의 그늘에 불균등한 발전, 계급 차이가 내재돼 있는데 중국의 현 정치체제가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는 거다. 항상 역사는 엄중하게 진행 중인 거다. 클라우스 뮐한 지음/윤형진 옮김/너머북스/908쪽/5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