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조용기 목사 ‘울산 생가’ 보존 놓고 갈등
KTX울산역 개발사업에 조 목사 생가 포함
생가 보존회 “세계적 종교지도자 기념해야”
시행사 “도심 균형 개발 사업에 예외 없어”
울산 출신 고(故) 조용기 목사가 태어난 생가가 KTX울산역 역세권 개발사업에 포함되면서 보존 여부를 놓고 갈등이 일고 있다. 울산이 낳은 종교 지도자의 흔적을 기념하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지역 균형발전에 중요한 사업인 만큼 예외를 두기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달 30일 오전 KTX울산역 뒤편 진장마을에서 한적한 이면도로를 따라 들어가니 조용기 목사의 울산 생가가 눈에 들어왔다. 생가는 철제 울타리에 둘러싸여 굳게 잠겨 있었고, 낯선 이가 서성이는 게 신경 쓰인 듯 개 여러 마리가 동시에 짖어댔다.
울타리 안쪽에는 ‘재단법인 은혜와진리교회’ 명의로 된 경고판이 보였다. ‘2018년 12월 1일부터 외부인의 무단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었다.
철망에 적힌 전화번호로 연락하자, 10여 분 뒤 교회 측 관리인이 문을 열어줬다. 오솔길 같은 진입로를 중앙에 두고 왼편에는 멋들어진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고, 오른쪽 과수원에 하얀 배꽃이 가득했다. 곧이어 낡은 양옥식 관리동과 함께 고즈넉한 한옥 한 채가 수려한 배롱나무(백일홍)를 끼고 반듯하게 서 있었다. 생가는 깨끗하게 보존한 상태로, 방문마다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이 한옥은 세계 최대 단일 교회를 일구었던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교회 측 관리인은 “사람들이 생가에 함부로 들어오는 일이 잦고 호기심에 방문 창호지를 뚫기도 해 지금은 개방하지 않는다”며 “개발사업 때문에 이곳이 멸실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교인들이 많이 걱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2일 울산도시공사와 한화솔루션(주) 등에 따르면 생가가 있는 울주군 삼남읍 신화리 일대는 2019년 KTX울산역 역세권 복합특화단지 조성을 위한 개발구역에 해당한다. 한화솔루션과 울주군, 울산도시공사가 특수목적법인을 만들어 민관 공동 투자로 시행하고 있다. 사업구역 약 153만㎡에는 1만 2000세대(3만 2000명 수용) 아파트와 첨단 산업단지(42만 여㎡) 등이 들어선다. 예상 사업비는 총 9050억 원. KTX울산역 배후에 산업, 연구, 교육, 주거, 기업 지원 기능을 갖춘 자족 가능한 복합 신도시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사업 기간은 2026년까지로 예정돼 있으나 다소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울산시가 일자리 창출과 도심 균형발전을 위해 상당히 공들여 온 사업이다.
이 사업이 예정대로 추진되면 조용기 목사의 생가는 철거되고, 그 자리에 아파트나 준주거 시설 등이 들어선다. 사업부지 안에는 은혜와진리교회, 그리고 조용기 목사의 동생 조용목 목사의 땅이 총 3만 2000㎡가량 포함돼 있다. 조용목 목사는 은혜와진리교회 담임목사다.
우선 지역 기독교계 등은 생가 철거에 반대하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정치인과 종교인, 법조인 등이 ‘조용기 목사 생가보존회’를 결성해 활동 중이다. 생가보존회에 이름을 올린 국민의힘 이채익 국회의원(국회 조찬기도회 회장·울산 남구갑)은 “조용기 목사는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종교·영적지도자이고 울산의 큰 자산”이라며 “조 목사의 생가를 보존하기는커녕 허물어버리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역세권 개발사업에서 생가는 제외하고 원형 보존해 기념사업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화솔루션과 울산도시공사 등은 그간 은혜와진리교회 측에 생가를 철거하는 대신 환지(일정한 규모의 새 땅을 주는 것) 보상 등을 제시했지만 뚜렷한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화솔루션 관계자는 “이미 4년 전부터 시작한 사업이고 교회 측과 환지, 금전 보상 등을 논의했지만 조율이 원활하지 않아 개발동의서를 받지 못했다”며 “조 목사의 생가를 보존하고 싶어도 이미 사업이 인허가 신청 단계까지 다다랐고, 서울산 중심의 도심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사업이어서 생가를 보존하면서 사업을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난색을 보였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