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심리학 전문가 이수정 교수가 바라본 ‘4세 아동 친모 학대 사건’
“사회·경제적 고립이 참극 근원, 진짜 주범 누군지 따져 봐야”
온전한 사고 가능해야 모성 작동
장기간 폭력이 정신적 공황 초래
가해자인 동시에 친모도 피해자
사법체계서 ‘가스라이팅’ 고려를
범죄심리학 전문가 이수정(사진)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을이(가명) 사건’(부산일보 30일 자 8면 등 보도)의 친모에 대해 “사회적 네트워크가 끊어진 상황에서 폭력에 노출돼 정신적 공황상태”라고 진단했다. 이어 사회적 고립을 가스라이팅 성매매와 아동 학대로 이어진 비극의 근원적 배경으로 분석했고, 이 사건 학대의 ‘진정한 주범’이 누구인가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 교수는 지난 29일 〈부산일보〉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독특한 심리적 지배현상인 가스라이팅이 가능하려면 사회적으로 고립돼야 한다”고 강조하며 “(가을이 친모는)심리적으로 지배당할 정도의 사회적 격리와 함께 폭력, 성폭력에 노출돼 매일매일 정신적 공황상태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과 검찰 수사 결과, 가을이 친모 A(27) 씨는 동거녀 B(28) 씨에게서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상황에서 500일간 2400여 차례 성매매를 강요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교수는 친모가 아기 식단을 공유하기 위한 모임에서 B 씨를 만난 점, 지인들에게 “저 언니처럼 되고 싶다”며 B 씨를 우상화한 점 등이 가스라이팅을 당한 친모의 당시 심리적 취약성을 드러낸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만약 남편이나 식구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면 굳이 아기 식단까지 제 3자와 의논할 필요가 없다. 친정 엄마한테 물어보면 된다”라며 “그런데 당초 사회적 네트워크가 약하고 경제적 독립이 어려운 상황에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의존’을 하고 싶어 하는데, 가스라이터는 그 틈을 파고든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서적으로)취약한 사람일수록 의존적이다. 경제 활동을 해 보지 않고 학력도 높지 않으면 아무래도 현혹돼서 상황을 해결해 보고자 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 교수의 진단은 가을이 모녀가 사회적 단절 상태에 놓이지 않았다면 잇단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의미다. 형사적 처벌을 넘어 사회 안전망의 확대가 있어야 가스라이팅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A 씨가 모성 본능을 상실하고 가혹한 학대의 행위자가 된 것에 대해서는 “흥미로운 건 사람들이 모성 본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모성)조차 합리적 사고가 필요한 능력”이라며 “장기간 폭력에 노출되면 자신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어떤 상황보다도 중요할 것이기 때문에 아이를 돌볼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밝혔다.
가스라이팅에 의한 모성 상실은 ‘누구에게 학대의 책임이 더 큰 것인가’로 이어진다. 이 교수는 “친모는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다. 그런 피해는 형사사법적으로 전혀 배려의 대상이 아니다”며 “정말 학대의 주범은 누구냐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강요를 한 이가 더 주범 아닌가”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가을이는 가스라이팅의 ‘희생양’이었다는 게 이 교수의 시각이다. 이 교수는 과거 재판 참석 경험을 언급하면서 “가해자는 자신의 목소리가 유일하게 신적인 존재가 돼야 하기 때문에 아이를 징벌하는 방식으로 희생양으로 삼았고 결국 아이가 맞아 죽은 사건이 있었다”며 “(B 씨가)아이를 비난하니까 시키는 대로 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이단 집단 같은 그런 상호작용이 생긴다”고 분석했다.
가해자이자 동시에 피해자인 친모의 상황이 현재의 형사사법적 시스템에서 충분히 고려되기 힘들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가해자가 어떠한 조건에 놓여 있느냐를 철저히 양형 판단에 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신적 취약성에 대한 감정 전문가의 개입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어 “면죄부를 주라는 얘기는 아니지만, 질 만큼만 책임을 지게 하라는 것”이라며 “‘모든 자유로운 의사결정권이 다 가해자에게 있다고 보고 양형 인자를 정했는데, 만일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