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3색 性이야기] “괜찮지 않다”고 말하자
임의현 성 심리학자
코로나를 겪기 전 직관을 위해 가끔 야구장을 찾았다. 야구장에 갔으니 응원을 준비하며 치맥을 즐고 있는데 옆쪽 관중석이 소란스러웠다. 뒤에 앉은 커플이 콜라를 땄는데 앞쪽 부부의 등에 왈칵 쏟아진 것이다. 잘못한 쪽은 연신 미안하다고 했고 난데없이 콜라를 뒤집어쓴 여성은 짜증을 내고 있었다. 잠시 후 더 소란해졌는데 이유는 몇 번이나 사과했는데도 왜 받아주지 않느냐는 거였다. 하지만 콜라 세례를 받은 부부는 괜찮지 못한데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기 시작 전 콜라 세례를 받았고 9회까지 끈적거리는 상태로 관람하는 게 괜찮기엔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여튼 그 소란을 한참 보고 있다가 문득 괜찮음을 강요받으며 살았던 때는 언제인지 생각했다. 나는 화가 났고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지만 굳이 엄마가 언니와 손잡게 하고 화해를 강요했던 일이나, 내가 잠시만 참으면 모두가 편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뜩잖은 일을 했던 예전 상황들이 머리를 스쳤다.
통계를 내 본 적은 없지만 부부 문제 상담을 요청하는 1순위는 ‘원하는데 안 해주니까’인 것 같다. 물론 정확히 저런 표현 말고도 자꾸 거절을 당하거나, 짐승이냐는 비난이 섞인 말투, 그것밖에 모르냐는 식의 다른 표현을 다 고려해 볼 때 결국 못 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일차적으로는 못 하는 게 문제라지만 마음의 상처는 딸려 온다.
이런 경우 연애할 때 둘의 섹스는 어땠는지 질문하는 건 너무 자연스럽다. 보통은 연애할 때 혹은 신혼 때에는 지금과 달랐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왜 달랐을까? 그때는 둘만 생각하면 될 때였으니까, 지금처럼 살림살이가 다 눈에 보이고 너무 현실적인 상황은 아니어서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 젊어서 욕구도 컸으니까, 이 사람도 하는 걸 좋아했는데 등 이유를 찾으려면 손가락이 부족할 정도다. 간혹 부부의 대답 중 ‘받아 준 거죠’ ‘맞춰 준 거예요’라는 표현을 듣게 된다. 여기서부터가 잘못 끼운 단추다.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도 아닌데 왜 그때는 되던 게 지금은 안 되는 거야’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아침에 보고 저녁에 봐도 또 보고 싶고 계속 같이 있고 싶은 연애 시절이었다 해도 섹스를 하고 싶지 않았다면 받아주지 말았어야 했다. 맞춰 주지 말았어야 했다. 처음부터 서로의 ‘예스’와 ‘노’를 명확하게 했다면 처음엔 좀 서운할망정 시간이 흐른 뒤 변했다거나 식었다는 식의 불만은 줄었을 것이다. 잦은 거절을 하는 애인이었다면 결혼을 더 심각하게 고려해 볼 수도 있는 일이다. 개인의 성욕이 높지 않다면 그 정도 거절은 감내할 마음을 이미 먹고 결혼을 결정했을 수 있는 일이다.
뭔가 마뜩잖을 때 정확히 거절 의사를 말해 보자. 보통은 ‘왜 그러는데?’라는 질문과 함께 해결을 위한 노력의 가능성이 좀 더 커질 테니 지금부터 분명한 의사 표현을 연습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