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아진 ‘심장의 문’, 수술 대신 시술로 해결한다
대동맥판막 협착증과 타비 시술
작은 절개만으로 인공판막 삽입
80세 이상·고위험군 본인부담 5%
지난해 보험 혜택 후 시술 2배 증가
심장 소리 이상하면 꼭 검사받아야
고령일수록 수술 위험해 시술 추천
당뇨·뇌졸중 등 동반될 때도 고려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심장의 문’ 역할을 하는 대동맥판막이 닳거나 좁아져서 혈액순환이 안 되는 질환이다. 주요 증상으로는 실신, 가슴 통증, 호흡곤란 등이다. 하지만 아주 심하지 않으면 증상이 없어 발견이 쉽지 않다. 중증도 수준의 환자도 절반가량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망률은 아주 높다. 증상 발현 후 2년 동안 치료를 받지 않은 환자의 약 50%가 사망할 정도로 치명적이다.
■타비 시술 보험적용 이후 시술 2배 증가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이전에는 수술을 통해 가슴을 열어 문제가 된 판막을 제거하고 인공판막으로 교체했다. 그러다 최근 들어선 가슴을 열지 않고 작은 절개만으로 카테터를 넣어 인공판막을 삽입하는 타비(경피적 대동맥판막 치환술, TAVI) 시술이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
타비 시술의 유효성이 검증되자 지난해부터 보험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만 80세 이상이거나, STS(심장수술 위험도) 8점 이상의 고위험군, 흉부외과 전문의가 수술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환자는 본임 부담금이 확 줄었다. 기존의 80%였던 환자 본인부담률이 5%까지 낮아졌다.
부산지역의 경우 급여 적용 직전인 2022년 4월 대동맥판막 협착증으로 진료받은 환자 수는 660명이었으며, 급여 직후인 5월 한 달 만에 약 7.5% 증가한 710명이 치료를 받았다.
부산대병원 순환기내과 이한철 교수는 “보험 적용이 되지 않아 타비 시술을 주저했던 환자들도 부담 없이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부산 경남지역 환자의 약 34%를 커버하는 부산대병원의 경우 보험 확대 후에 타비 시술 환자가 2배가량 증가했다”고 말했다.
■‘슈욱슈욱’ 소리 들리면 심장초음파 해야
대동맥판막 협착증의 증상을 호소하며 병원에 내원했을 때는 이미 상태가 많이 진행됐기 때문에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가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사망률이 20% 이상이지만 시술 또는 수술을 받은 경우엔 사망률이 4%로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증상이 생기기 전에 미리 아는 것이 중요하다. 증상이 없는데 질환을 의심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청진이 있다. 자주 찾는 병원에 가서 심장 소리를 들어 봐 달라고 요청하면 된다.
심장 소리가 이상하게 나면 대동맥판막 협착증일 가능성이 높다. 정상 심장이 ‘쿵쿵’ 하는 소리를 낸다면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는 ‘슈욱슈욱’ 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 경우 심장 초음파 검사를 통해 자세한 진단을 해 볼 수 있다. 2021년부터 심장초음파도 건강보험 적용이 대폭 확대됐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의 주요 원인이 노화이기 때문에 고령층에서 발병률이 높다. 전체 인구의 유병률은 1.8% 정도인데 80대 이상에서는 10%가 넘는다.
올해 초 80대 초반의 남성 환자가 쇼크로 부산대병원을 방문했는데 원인이 중증의 대동맥판막 협착증으로 확인됐다. 이 환자는 폐부종 때문에 호흡곤란도 심했다. 응급으로 타비 시술을 진행했고 시술 후 다음 날부터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폐의 부종도 일주일 만에 많이 빠졌다. 병원에 왔을 때 심장기능이 정상의 4분의 1에 불과했는데 퇴원할 때는 절반 수준으로 회복됐다.
최정현 교수는 “해당 환자는 수술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타비 시술이 없었다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급작스럽게 죽을 수 있는 병이다. 약물치료는 효과가 없고 현재로선 수술이나 시술을 받는 것이 최선의 치료법이다”고 설명했다.
■판막 교체수술 vs 타비 시술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심장 모양과 크기, 동맥 구조, 다른 질병 유무 등에 따라 다양한 치료 옵션이 있다. 증상이 가벼운 경우 폐부종은 이뇨제를 이용해 숨찬 증상을 치료한다. 심한 경우 대동맥 판막에 작은 풍선이 달린 카테터를 넣어 대동맥판을 넓히는 풍선확장술을 시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판막을 교체하는 수술이나 시술이 필요하다.
판막 교체 방법으로는 가슴을 열어 문제가 된 판막을 인공판막으로 교체하는 수술적 대동맥판막 치환술(SAVR)과 경피적 대동맥판막 치환술로 불리는 타비(TAVI)시술이 있다.
고령일수록 수술 사망률이 높아지고 합병증이나 동반 질환이 많기 때문에 시술을 권한다. 뇌졸중, 당뇨병, 만성신부전 등의 위험 인자를 갖고 있는 경우에도 시술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반면 나이가 젊고 위험 인자가 적은 경우에는 수술 성적이 좋은 편이어서 수술이 추천된다.
오준혁 교수는 “환자 심장판막의 해부학적 구조와 위험도 등을 다각적으로 따져서 수술을 할 것인지, 시술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시술을 받은 환자와 수술을 받은 환자의 치료 성적이 거의 비슷하게 나오고 있어 고위험군으로 한정돼 있던 타비시술 대상이 점점 확대되는 추세다”고 설명했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의 보험적용 이후 보장 정도에 대한 오해로 해프닝이 한 번씩 벌어진다.
모든 환자에게 본인 부담률 5%를 적용하는 것이 아닌데,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간혹 있다. 만 80세 이상 환자와 심장수술 위험도(STS 점수 8점 이상)가 높은 고위험군일 경우에만 본인 부담률 5%가 적용된다. 수술 위험이 적은 저위험군은 이전과 동일하게 80%를 부담하고, 중위험군은 50%를 부담해야 한다.
이한철 교수는 “연세가 많은 분들은 숨이 가쁘거나 흉통이 오거나 의식을 잃은 경우, 곧장 병원에 가서 판막에 문제가 있는지 또는 관상 동맥에 문제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타비 시술에 대해 보험도 적용되고 있으니 심장에 이상징후가 있는 80세 이상 고령 환자는 순환기내과를 방문해 꼭 검사를 받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병군 선임기자 gun39@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