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우연인 듯 필연으로 찾아온 부산의 기회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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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윤 대통령이 현실화한 부산엑스포
가덕신공항 확정도 우연한 계기로
지역소멸 극복 열망이 만든 필연
역사적 절실함 실사단에 닿기를

2030부산세계박람회(월드엑스포) ‘탄생 설화’는 그 거대한 규모에 비해 싱겁다. 2014년 부산시장 선거에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후보로 나선 서병수 의원의 공약으로 부산엑스포 구상이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그 선거에선 야권단일후보로 자리매김한 무소속 오거돈 후보의 기세가 매서웠다. 보수 텃밭에서 거센 도전에 직면한 서 의원으로선 뭔가 차별화 전략이 필요했을 게다. 세계 3대 메가 이벤트 중 하나를 부산으로 유치한다는 얘기는 시민들의 눈길을 끌 만했다. 반면 “올림픽도 월드컵도 아닌 엑스포를 왜”라는 시큰둥한 반응도 있었다. 그래, 왜 엑스포였을가? 최근 만난 서 의원의 설명은 간단했다. “당시 선거를 돕던 한 교수가 제안한 아이디어였다.” 물론 캠프 내부 검토를 거친 결과물이겠지만, 현실성보다는 직관적이고 정무적인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발아된 부산엑스포라는 씨앗이 10년도 채 걸리지 않아 결실을 기대할 수준까지 성장했으니 부산으로선 그 우연한 시작이 고마울 따름이다.


지역에서만 맴맴 돌던 부산엑스포가 본격적으로 탄력을 받은 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대선 기간 중 “나라의 명운을 걸고 유치하겠다”고 나선 이후부터다. ‘스윙 스테이트’인 부산 표심이 대선 승리에 중요한 건 사실이나 ‘명운’을 걸 정도의 정치적 리스크를 감수하고 나선 건 예상 밖이었다. 엑스포에 더해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깜짝 공약’으로 선보인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 유력 대선주자로 떠오른 2021년 후반까지만 해도 대다수 지역은 “서울에서만 활동한 검사 출신 대통령이 지방에 관심이나 갖겠냐”고 걱정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인수위 때부터 ‘지방시대’를 천명했고, 특히 부산을 비롯해 동남권을 수도권과 경쟁할 수 있는 ‘제2의 발전축’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생각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인수위에 부산엑스포 태스크포스를 설치하고, 가덕신공항의 2029년 개항을 밀어붙여 그 신념의 확고함을 보여 줬다. 윤 대통령의 확신 뒤에는 최측근인 장제원 의원과 대선 때부터 자문역을 한 박형준 부산시장 등이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안다. 충청 출신에 서울 토박이에 가까운 윤 대통령의 지근거리에 지역 인맥이 포진한 것 또한 부산의 행운이다.

부산엑스포와 함께 부산 발전의 양날개로 여겨지는 가덕신공항이 확정되는 과정에도 2021년 오거돈 시장의 돌연한 낙마로 치러진 부산시장 보궐선거라는 우연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열세인 판세를 뒤집기 위해 시민 숙원인 가덕신공항 특별법을 전격적으로 처리했다. 결국 노무현이 띄운 가덕신공항의 꿈은 문재인 시대에서 특별법 통과로 불가역성을 갖게 됐고, 서병수가 쏘아올린 부산엑스포의 꿈은 윤 대통령이 ‘명운’을 걸고 넘겨 받으면서 가능성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보수와 진보 정치권이 부산의 양대 비전을 하나씩 맡아 관철시킨 것인데, 여야 모두 사력을 다해야 얻을 수 있는 부산 민심의 역동성이 배경으로 작용했다.

반복된 우연은 필연이라고 했다. 국가대개조를 위한 자원과 역량이 부산으로 모이는 듯한 이 우연의 연속에는 어떤 필연적 동인이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건 바로 쇠락해가는 지역을 변화시키려는 시민들의 꿈이 아닐까? ‘노인과 바다’라는 표현처럼 부산은, 아니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 전체가 소멸하고 있다. 저명한 인구학자들은 최근 몇 년 새 더욱 가속화된 청년들의 수도권 유출 현상을 짚으면서 “지방소멸을 바로잡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입을 모은다. 지역의 죽음은 곧 대한민국의 죽음이다. 급속도로 다가오는 이 흐름을 끊기 위한 돌파구 마련은 시대적 요구다. 수도권 블랙홀의 거대한 중력을 이길 또 하나의 발전축을 세워 나라의 미래를 다시 그리려는 시도가 ‘제2의 도시’ 부산의 꿈과 맞닿게 된 것은 감히 ‘필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왕의 대관식을 위한 화려한 이벤트로 엑스포를 활용하려는 경쟁국의 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역사적 무게와 절실함이 담겼다.

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에 지나지 않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했다. 세계박람회기구(BIE) 실사단 방한을 앞두고 부산 남구 한 아파트 주민들은 십시일반으로 돈을 걷어 엑스포 응원 현수막을 아파트 외벽에 걸었고, 한 지역 여성단체는 엑스포 율동을 만들어 실사단 방문에 맞춰 플래시몹을 벌인다고 한다. 부산엑스포의 꿈은 일부 지역 리더의 것에서 340만 부산시민의 꿈으로 확장됐다. 시민들의 이 간절함이, 부산엑스포가 갖는 시대적 의미가 4일 부산에 발을 딛는 실사단 8인의 마음에 가닿기를 기원한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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