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조금 걷어내자 두개골·허벅지 뼈 등 80여 점 드러나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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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진주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중간보고회 4일 열려
지표면 20cm 아래에서 유해 무더기 발굴…완전한 형체 유해는 없어
탄피·탄두 산발적 확인…유해 구덩이 모아 2차적으로 매장 추정

4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야산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김현우 기자 4일 경남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야산에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유해 발굴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김현우 기자

“73년 동안 이름 없는 산에서 아무도 모르게 묻혀 계신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아버지 유해를 찾았으면 합니다”

한국전쟁 전후 진주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 정연조 회장이 명석면 관지리 유해발굴 현장에서 한 말이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남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삭평마을의 한 야산에서 유골이 대량으로 출토됐다. 적어도 유골 수가 20구 이상일 것으로 파악되는 가운데 학살 도구인 탄두와 탄피도 드러났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김광동)와 발굴을 맡은 동방문화재연구원(원장 이호형)은 4일, 관지리 산 174번지 조사 중간보고회를 가졌다.

동방문화재연구원이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중간보고회에서 발굴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현우 기자 동방문화재연구원이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중간보고회에서 발굴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김현우 기자

앞서 지난달 22일 ‘진주 국민보도연맹 사건 유해발굴을 위한 개토제’를 연지 15일 만이다.

한국전쟁 발발 후 1950년 7월쯤 진주지역 국민보도연맹원과 예비검속자들은 각 경찰지서에서 소집 통보를 받고 출두했거나 관할 경찰서 경찰에게 연행됐다가 이후 경찰서와 교도소에 구금됐다.

이후 이들은 명석면 관지·용산·우수리, 문산읍 상문리, 마산 진전면 여양리 등에서 집단으로 학살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발굴 장소는 당시 용산고개에서 희생 당한 보도연맹원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발굴된 유해 모습. 김현우 기자 발굴된 유해 모습. 김현우 기자

동방문화재연구원에 따르면 유해는 불과 지표면 20cm 아래에서부터 드러났다.

당시 지표층과 유해가 매장돼 있는 구덩이까지 파기도 전에, 흙을 조금 걷어내는 과정에서 발굴된 것.

그리 많진 않지만 대퇴부 등 일부 유해가 출토됐다.

유해가 다수 매장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구덩이는 조사지역 남서쪽 경계에서 조사지역 중앙부까지 확인됐다.

아쉬운 점은 유해가 매장됐을 당시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을 정도로 구덩이가 이미 심하게 유실돼 바닥부분 일부만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구덩이에서는 허벅지 뼈와 정강이 뼈 등이 일정한 너비에서 2중, 3중으로 중첩돼 출토됐지만 완전한 형체의 유해는 물론, 정형성을 보이는 유해도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연구원은 유해가 구덩이 내부 공간에만 2~3겹 포개진 상태로 매장된 점, 정형성이 없는 점, 세워진 유골이 없이 지면에 편평하게 놓여 있는 점들로 미뤄, 주변에 있었던 유해를 이 구덩이에 모아 2차적으로 매장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 외에도 유해와 함께 탄피와 탄두가 산발적으로 확인됐으며, 유품으로는 단추와 칫솔, 틀니 등이 드러났다.

이번에 드러난 유해는 완전한 형체가 없었으며, 정형성을 보이지도 않았다. 김현우 기자 이번에 드러난 유해는 완전한 형체가 없었으며, 정형성을 보이지도 않았다. 김현우 기자

연구원 관계자는 “이번에 조사된 유해는 전신유해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두개골 2점과 허벅지 뼈, 정강이 뼈 등 80여 점이 조사돼 20구 이상일 것으로 추산한다”고 말했다.

연구원은 앞으로 수습조사와 감식조사 과정을 통해 정확한 유해 수를 조사할 계획이다.

정연조 유족회 회장은 “남은 유해도 하루 빨리 발굴해 온전히 모셔야 한다. 이번 발굴에서 아버지 유해가 확인되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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