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조사 착수에만 일주일… 관련 조례마저 없었다
서구청, 조사위 구성 늦어져
심리상담 등 완화 조처 못 해
고충대응 전담직원조차 없어
조례 제정은 연제구 ‘유일’
속보=부산 서구청이 최근 제기된 ‘갑질’ 주장(부산일보 4월 4일 자 10면 보도)을 최초 인지한 지 일주일 만에 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갑질 관련 대응에 대한 조례가 없어 조사위원회를 꾸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만큼 관련 조례 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4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구청은 지난달 27일 직장 내 괴롭힘 논란을 최초로 인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조사위원회가 꾸려져 조사 착수한 것은 지난 3일로 실제 조사까지는 일주일이나 소요됐다.
구청에 따르면, 앞서 직장 내 괴롭힘을 주장한 공무원 A 씨는 지난달 27일 부산시 성비위근절추진단에 신고했다. 자신의 부서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성비위근절추진단에서 담당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A 씨 신고가 반려되자, A 씨는 지난달 28일 서구청 공직부조리센터에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
시에 신고가 접수되면서 구청도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됐지만 구청이 진상조사에 곧바로 나서지 못한 것은 조사위원회 구성과 규모 논의에 시간이 소요됐기 때문이다. 구청은 지난달 28일 부산시 성비위근절추진단에 조사위원회 구성과 규모를 문의해 받은 답변을 토대로 기획감사실 관계자 2명과 변호사, 노무사를 포함한 총 4명으로 이뤄진 조사위원회를 지난달 30일 꾸렸다. 하지만 변호사와 일정 조율이 안되는 등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가기까지는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고용노동부에서 권고하는 심리상담 등 피해 완화 조처나 고충 대응 전담 직원 지정도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구청이 진상 조사 근거로 삼고 있는 2020년 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단계부터 피해자에게 심리 상담 등 피해 완화를 위한 조처를 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에 전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고충 대응 전담 직원을 둘 것도 권장한다. 하지만 구청은 해당 권고 사항 모두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한 조사가 순조롭지 못했던 것은 대응 매뉴얼 역할을 하는 관련 조례가 없기 때문이다. 조사위원회 규모나 구성, 조사 시작 시기 등이 명문화되어 있었다면 사건 초기부터 체계적인 대응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실제 연제구는 2021년 ‘부산광역시 연제구 직장 내 괴롭힘 금지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신속한 진상조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조례에 조사위원회 규모와 구성 등을 명시했다. 또 직장 내 괴롭힘을 예방하기 위해 2년마다 실태조사 실시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연제구를 제외한 부산시 15개 구·군은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 대응을 위한 별도 조례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고용노동부는 각 사업장별 실정에 맞는 자체 매뉴얼 마련을 당부했지만, 부산시 기초지자체 대부분 서구청처럼 정부 매뉴얼이나 공무원 행동강령 등을 참고해서 직장 내 괴롭힘을 대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국공무원 노동조합 부산지역본부 추승진 정책부장은 “직장 내 괴롭힘 문제는 공직 사회의 상명하복식 문화와 연관되어 있어 전반적인 개선 의지가 필요하다”며 “단순히 개인과 개인의 문제가 아닌 만큼, 실질적 조례를 만들어 체계적 대응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