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선 소설가 “빨치산과 원폭 피해자의 삶, 소설에 담고 싶었어요”
6번째 장편소설 ‘아무것도 아닌 빛’
낙동강변 서민 아파트 배경
90세 안재석·조향자의 삶
아팠던 역사·팬데믹 함께 풀어내
정영선 소설가의 <아무것도 아닌 빛>(강)은 한국 현대사를 가로지르는 장편소설이다. “생존해 계신 빨치산이나 원폭 피해자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저도 글을 쓸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살아있는 이 분들의 삶을 소설로 담고 싶었다.” 그는 한 단체에 지원해 원폭 피해자 구술 작업을 했다고 한다.
소설은 낙동강변 ‘은곡’의 서민 아파트 단지에 사는 90세 전후의 남녀 노인-안재석과 조향자가 살아온 고단한 삶을 코로나 팬데믹에 처한 최근 상황과 함께 풀어낸다. ‘아팠던 역사’와 ‘힘겨운 현재’가 우리 삶의 만만찮은 날·씨줄로 엉겨 있다는 것을 소설은 보여주면서 그것을 넘어설 ‘선의(善意)의 빛’을 전망한다.
안재석은 신불산 빨치산 활동을 한 뒤 동지의 밀고로 1953년 용두산공원에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고서 30년 감방 생활을 한 장기수 출신 노인이다. 조향자는 일본인 아버지와 조선인 어머니를 둔 귀환동포로, 치매를 앓던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인 남편을 먼저 보냈으며 또 파혼과 실패를 거듭하던 아들마저 자살해 홀로 사는 노인이다.
안재석의 삶을 여전히 올가미처럼 붙들어 매는 것은 ‘동지의 밀고’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의심의 매듭이 풀리려는 듯 그 앞에 이미 죽었다고 여긴 동지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소설은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해방 이후 좌익운동에 뛰어든 젊은 안재석과 그의 동지들이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전쟁(세계대전)을 일으킨 일본이 아니라 왜 조선이 남북으로 나뉘어야 하는지’(129쪽) 하는 것이었다. 상상 이상으로 현실은 강고하다는 것이다. 그중 한 예가 배신이 난무하며 차라리 ‘적은 분단지지 세력이 아니라 내가 의심한 동무들이었다’(224쪽)는 것이다. 배신한 동지가 치매를 앓는 듯 요양병원에서 내뱉는 소리에도 강고한 현실의 심층이 담겨 있을 것이다. “절대 미국에 반대해서는 안 된다. 그러다 죽은 사람이 몇 사람인지 아나?”(44쪽)
철벽같은 현실의 아픔은 작가 취재기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일본에서 조선학교를 지켜온 이들은 “한반도 분단 상황이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 일본 사람들이 통일도 못하는 나라라고 무시하는 것 같다”며 뼈아픈 눈물을 보였다는 것이다.
강고한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안재석의 표현대로 ‘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스무 살 때 밝힌 등불을 나 스스로 부정하거나 끄고 싶지 않다’(215쪽)는 아득한 다짐 같은 것일까. 작가는 거창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소설 제목 ‘아무것도 아닌 빛’이 함의하는 것이다. 작가의 말이다. “사람마다 아무 대가 없이 베푼 선의들이 있고 그 선의가 사람의 삶을 지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아니지만 삶의 빛이 되는, 그런 걸 말하고 싶었다. 작은 선의가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을 소설에서는 조향자의 삶을 통해 보여주려 했다. 조향자는 ‘사람을 깊은 마음으로 사랑하고 헌신하는 존재’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빛’이 아무것도 아니지 않다는 것을 믿으며 강고한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가. 이것이 이 소설의 전언이자 물음인 것이다.
몇십 년을 이어온 안재석과 조향자의 만남도 소설 저류를 흐른다. 작가는 “오랫동안 간직한 그리움도 소설에 더하고 싶었다”며 “소설에서는 분단의 기원으로 가서 그 그리움을 불러오고 싶었다”고 했다. “함축적인 서술과 시점 이동 등으로 읽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독후감에 대해 작가는 “인물이 많은 것과, 시점 이동이 걸렸지만 그것들이 만나고 어긋나면서 소설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의 해설 ‘사랑과 믿음의 엘레지’, 그 공력이 작품과 잘 어우러져 있다.
‘소설가라면 장편을 써야 한다’는 명제를 환기하듯 정영선은 장편소설의 작가다. 그간 소설집 1권을 냈으나 이번에 6번째 장편소설을 냈다. 그는 “장편은 인간과, 그들을 둘러싼 겹겹의 세계를 무게 있게 펼쳐보인다는 점에서 힘들지만 매력적이다”고 했다. 그는 1997년 등단했고 요산김정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