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하셨던 몸’ 코로나 방역장비, 일상회복 후 ‘짐’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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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기·열 감지기 등 활용 ‘뚝’
부피 큰 건 창고서도 애물단지
관리 안 되고 행방 묘연 사례도
자영업자 “중고시장 찬밥” 한숨

경남의 한 지자체 창고에 보관 중인 열화상 카메라. 코로나19 초반 ‘귀하신 몸’이었지만 지금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김현우 기자 경남의 한 지자체 창고에 보관 중인 열화상 카메라. 코로나19 초반 ‘귀하신 몸’이었지만 지금은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김현우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었던 방역 장비가 일상 회복 이후 값비싼 쓰레기로 전락했다. 공공기관과 음식점 등에서 활용됐던 열화상 카메라와 UV살균기, 비말 차단 아크릴 가림막 등이 이제 창고를 채우는 ‘짐’이 돼 버린 것이다.

부산 중구청은 5일 코로나 때 꾸준히 사용하던 에어샤워기 전원을 꺼 놓은 상태다. 영도구청 역시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열화상 카메라를 창고 등에 보관 중이다. 가뜩이나 짐이 많던 창고는 더욱 비좁아졌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경남 진주시는 2020년 이후 450만 원 상당의 열 감지기 3대를 구입했다. 각각 본청과 보건소, 서부보건지소에 배치됐지만 현재 제 역할을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한 대는 이미 철거돼 창고에 보관 중이다. 부피가 워낙 커 관리조차 쉽지 않다. 아직 설치돼 있는 것도 있지만 사용 빈도가 떨어져 사실상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방역 지침 완화 이후 지역민 대다수는 발열 확인이나 소독 없이 바로 입장한다.

창원시는 대당 1615만 원이나 하는 열 감지기 5대와 손 소독기 등을 구입했는데, 현재 코로나19 총괄 태스크포스 사무실 등에 분산해 보관 중이다.

보관뿐 아니라 관리도 문제다.

부산 중부경찰서에서는 지난달 21일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 출입구 옆 열화상 카메라 행방을 묻는 〈부산일보〉 기자 물음에 때아닌 수색 작업이 펼쳐진 것. 청사 장비를 담당하는 장비계 직원 2명과 민원실 직원 1명, 그리고 경무계 직원 1명까지 총 4명이 청사 건물을 이 잡듯이 뒤졌다. 창고나 민원 대기실을 확인해도 보이지 않던 열화상 카메라는 15분 뒤 민원 상담실 구석에서 발견됐다. 관리 자체가 아예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학교나 공공기관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아크릴 비말 가림막은 이미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한 중학교 관계자는 “학교 급식실에 있던 아크릴 비말 가림막을 치울 곳이 마땅치 않다.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치워 놨는데 벌써 파손된 것도 있다”고 밝혔다.

건물을 임대해서 쓰는 기관이나 자영업자는 방역 장비 관리에 더욱 골머리를 앓고 있다. 건물주 측이 미관을 문제 삼아 방역 장비를 치우라고 하지만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일부 자영업자는 무용지물이 된 방역 장비를 온라인 중고시장에 내놓지만 구매가의 절반 이하에도 거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 식당 주인은 “코로나19 당시 꽤 많은 돈을 들여 QR코드 인증용 태블릿 PC와 손 소독기를 샀다. 지금은 쓸 일이 없고 보관도 잘 안 돼서 중고시장에 올렸지만 한 달 넘게 안 팔린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값비싼 방역 장비가 관리 사각지대에 놓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관리자가 바뀔 경우 보관 장소를 모를 수 있고, 몇 년 뒤 다시 사용하더라도 정상 작동한다는 보장이 없다. 최근 3~6년 주기로 전염병이 재창궐하는 상황이다 보니 마냥 버리거나 팔 수조차 없는 현실이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지자체면 행안부, 학교면 교육부에서 명확한 지침을 내릴 필요가 있다. 많은 돈을 들여 구입한 방역 물품을 관리하지 못해 파손되면 결국 혈세를 버리는 꼴이 된다. 모든 부담을 지자체나 개인에게 전가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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