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봄의 리듬, 꽃의 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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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지난해 부산시민공원에서 열린 부산 봄꽃 전시회. 부산일보DB 지난해 부산시민공원에서 열린 부산 봄꽃 전시회. 부산일보DB

어느 첼리스트 이야기다. 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고자 했다. 오디션을 볼 때마다 고배를 마셨다. 전문연주자로 자리를 잡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지만, 거듭 쓴맛을 보니 실망이 컸다. 단지 경쟁률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지휘자를 찾아 원인을 물었다. 지휘자의 답은 이러했다. “음색도 고급스럽고 음정도 정확합니다. 문제는 박자입니다. 박자가 흔들리면 리듬을 타기 어렵고 다른 소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이죠.” 개인의 기량보다 한데 어우러지는 가치를 놓치고 있었던 셈이다.

박자는 연주자들이 소리를 내는 타이밍을 결정하는 기준이다. 음악의 골격을 형성하는 공동의 약속이기도 하다. 박자의 구조와 맞물려 리듬이 형성되며, 여기에 다른 모든 음악적 요소들이 결합하여 응집력 있게 흘러가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박자의 일관성과 정확성은 조화로운 음악의 근본적인 조건인 셈이다. 전문연주자 중에도 박치가 없지 않다. 동료 연주자들의 타이밍을 해치는데도 정작 자신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다른 소리를 잘 듣지 않거나 자기 마음대로 곡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소리보다 다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이 필요한 까닭이다.

춘서(春序)는 봄꽃이 피는 순서를 말한다. 일지춘색(一枝春色)이라 했던가. 매화를 필두로 목련, 개나리, 진달래, 벚꽃, 철쭉이 차례로 꽃망울을 터뜨리는 법이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순서대로 피어나는 꽃들은 봄의 리듬을 자아낸다. 새들과 곤충이 찾아오고, 짙은 신록과 열매의 나날을 마중하면서 말이다. 미처 자각하지 못했지만 이미 꽤 오래전부터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동시에 만개한다. 춘서가 무너진 셈이다. 개화 시기의 엇박자는 생태계의 질서와 조화를 깨뜨린다. 아직 땅속에 잠든 곤충들은 너무 일찍 찾아온 봄의 전령들을 알지 못하고, 형형색색의 꽃들은 수분(受粉)을 기다리다 속절없이 저문다. 과일과 작물의 생장에도 비상이 걸리게 마련이다.

구석기시대에서 신석기시대에 이르는 1만 년 동안 지구 온도는 단 4도 상승했다. 그런데 화석연료를 사용하면서부터 100년간 1도 상승했다. 겨우 1도라 심각한가 싶지만, 문제는 속도다. 생태계 질서를 해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상승한 것이다. 가파른 기온 상승으로 박자가 무너지니, 계절은 자신의 리듬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여러 악기가 제 소리를 내면서도 다른 소리와 타이밍을 맞출 때 비로소 소리가 음악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봄은 단지 꽃으로만 오지 않는다. 봄날을 소란하게 하던 나비의 날갯짓은 어디쯤 와 있을까. 백화(百花)가 만발한 이즈음, 자연의 엇박자가 예사롭지 않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봄은 깊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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