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부울경이 답답한 이유
박세익 기획취재부장
엑스포 유치해 미래로 가야 할 부산
도시 혁신·변혁이 지상 최대의 과제
토목직 장악한 부울경 시설직 조직
브레인 도시계획 전문가 설 곳 없어
공무원 폐쇄성 악명 높은 부울경
도시의 주인 시·도민 결단이 살 길
우선 올 3월 기준 부산시청 시설직 공무원 숫자를 보자. 의외로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원 487명인 토목직의 현재 인원은 536명. 건축직 역시 정원 135명에 현원이 156명이다. 지적직도 정원이 25명인데, 더 많은 32명이 적을 두고 있다. 한데 도시계획직은 정원 6명에 현원은 5명이다. 그들에 비해 턱없이 적다. 부산시에는 분명 6개 과를 둔 도시계획국이 존재한다. 도시계획 업무는 늘 넘쳐 나는데도 그렇다. 왜 그럴까.
“휴직, 연수, 파견 등에 대비해 정원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부산시의 답변이다. 하지만 쉽게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같은 논리라면 도시계획직도 예닐곱 명은 돼야 하지 않나. 조경·녹지직이 250명, 농업직도 150명 수준이라는데, 유독 부산의 청사진을 그리는 도시계획직은 소멸 직전이다. 도시 규모를 감안하면 도시계획 전문 역량을 갖춘 공무원이 100명 이상은 있어야 할 일이다.
울산시청 사정도 마찬가지다. 올 2월 말 기준 토목직은 195명, 건축직 75명. 도시계획직은 단 한 명이다. 경남은 열악하다고 말할 수조차 없다. 작년 말 기준 경남도청 시설직 381명 중 토목직은 263명, 건축직 89명, 지적직 28명이다. 도시계획직은 아예 없다. 반면 수원시나 성남시 같은 경기도 지자체는 오히려 도시계획직 규모를 늘리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 LA는 부산과 비슷한 인구 380만 명이 사는 대도시다. 미국 내에서 도시계획이 제대로 되지 않은 곳으로 꼽히지만, 도시계획 공무원이 1000명이 넘는다. 미국 지자체들은 대체로 학계와 산업계에서 도시계획 전문 인력을 공개 채용한다. 그들이 마스터플랜 등을 직접 수립하고, 특별한 경우에만 전문 업체에 맡긴다. 무작정 외부에 용역을 주지 않는다.
미국 지자체는 도시계획위원도 대부분 시민에게 맡긴다. 교수, 전문가로 채우지 않는다. 그래도 되는 이유는 공무원이 도시계획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시민 위원은 학회 등의 교육을 받고 도시계획에 참여한다. 공무원들은 계획 과정에서 다양한 시민 참여 워크숍도 연다. 도시의 주인이 미래 도시계획에 참여하는 효과를 누린다.
수도권 일극주의에 대항할 남부권 핵심이라는 부산·울산·경남에서는 대부분 토목직이 도시계획 업무를 담당한다. 신시가지, 산업단지, 교통, 주거 관련 지구단위계획 등 미래 도시계획을 하드웨어 건설이 최상의 가치인 토목직이 수행한다. 손과 발이 머리를 대신하는 형국이다.
이런 차이가 나는 이유는?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거대한 세력을 형성한 토목직이 있어서다. 부산시청과 16개 구·군에는 1033명에 달하는 토목직 공무원들이 일한다. 그들에게 승진 등 기득권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지난해 부산에서 가까스로 채용된 도시계획직 공무원이 수개월 이상 다른 업무를 하다가 올해 초 뒤늦게 발령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과거 도시 확장과 건설 중심 행정 조직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인사 담당은 “해당 부서의 요청이 없다”는 이유로 도시계획직을 뽑지 않는다. 토목직 스스로 자리와 권한을 위협하는 그들이 필요하다고 할 리 없다. 이러니 도시계획 전문 인력이 부산에서 꿈을 펼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문 역량을 갖춘 청년들은 그렇게 수도권 지자체, 대기업, 전문업체로 유출된다.
도시 밑그림은 시·도지사와 도시계획 전문가를 컨트롤타워로 여러 분야 공무원·시민이 어우러져 그리는 것이 타당하다. 도시계획이 수립되면 토목직이 도로, 교량을 건설하고, 건축직이 건물을 올리는 일을 하면 된다. 거기서 도시계획 인력이라는 바퀴가 빠진 결과물은 어떨까. 이미 대상지가 조각나 사업 진행에 큰 걸림돌이 된 영도 해양신산업 부스트벨트에서 확인됐다.
부울경은 도시계획 용역을 발주해 이런 빈틈을 메우려 한다. 그런데 용역사가 그린 그림을 놓고 전문가가 아닌 이들이 여기 감 놓아라, 저기 배 놓아라 한다. 용역사 측은 “부산은 구석구석 계획하는 서울과 달리 도시계획을 하지 않는다. 세계 도시계획 흐름에 부합하는 역량이 부족한데도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다”고 한다. 이른바 ‘갑’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누가 시장이 되든 바꾸지 못한다는 말도 나온다. ‘어공(어쩌다 공무원·별정직 공무원)’인 시장이 ‘늘공(늘 공무원)’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이 칼을 휘둘러도, 늘공은 시장이 바뀐 뒤 되돌리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엑스포 유치를 꿈꾸는 부산권은 지금 변혁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그러니 시·도민들은 공무원 업그레이드를 더 강하고 당당하게 요구해야 한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이 도시의 주인은 늘공, 어공이 아닌 시·도민이다.
박세익 기자 run@busan.com